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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백세 건강 유지

[김동섭 복지전문기자 심층 리포트] 오전 8시 30분, 전남 고흥의 한 의원 물리치료실에 가보니 '입이 쩍'

[김동섭 복지전문기자 심층 리포트] 오전 8시 30분, 전남 고흥의 한 의원 물리치료실에 가보니 '입이 쩍'

  •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입력 : 2013.02.26 03:06

    [고령화로 흔들리는 건보 재정, 노인인구 38% 전남 고흥을 가다]
    노인비율 경기 과천의 4배, 6만 인구 같아도 진료비 2배
    의사 수, 고흥 109명 과천 74명… 약국, 고흥 34곳 과천 24곳
    "제도 개선이나 예방교육으로 의료비 증가 완화시킬 필요"

    지난 23일 오전 7시 30분. 우리나라 최남단 전남 고흥군 도양읍의 A의원 앞에는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 10여명이 병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에서 아침 첫차를 타고 병원에 온 사람들이었다. 미역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모(67) 할머니는 "아침에 일찍 병원에서 진료받아야 일하러 갈 수 있다"며 "동네 할머니 다섯 명과 함께 일찍부터 병원에 와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는 허리 통증과 무릎 관절염으로 3년 전부터 1주일에 1~2번씩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김모(74) 할머니는 "어떤 의원에서 물리치료를 잘해준다고 소문나면 다들 몰려간다"며 "1500원만 있으면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3층 물리치료실의 12개 병상이 이미 꽉 차 문 입구에선 순서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날 이 병원에 온 환자 중 80%가 65세 이상이었다.

    전남 고흥군의 한 병원에서 관절염·요통 등 만성질환 환자들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 병원 환자 중 70~80%가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김영근 기자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37.4%가 된다. 고흥군은 전체 인구(6만6300명) 중 38%가 노인으로 2050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앞질러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고흥군의 작년 한 해 진료비는 1245억원(건강보험 지원액 포함)이다. 1인당 진료비가 연간 170만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1인당 진료비 93만7908원에 비해 1.8배나 많다.

    고령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직격탄이 된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저출산·고령화로 현재의 보험료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노인들이 급격하게 늘어나 2060년에는 95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저출산으로 건보료를 낼 납세자는 줄어들고 의료비가 많이 드는 노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표적 고령 지역인 고흥을 인구가 비슷한 경기 과천(6만3100명)과 비교하면 명확히 드러난다. 과천은 노인 인구 비율이 9.1%이다. 총진료비는 576억원으로 고흥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인구 차이는 고작 3000명에 불과하지만 노인 인구가 많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65세가 넘으면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 환자가 많아진다. 고혈압 환자를 비교해보면 고흥이 과천에 비해 2.4배 많다. 당뇨병은 고흥이 2.5배, 관절염은 3.4배, 간질환은 2.1배가 많다. 특히 말기 암환자들이 많으면 진료비 부담은 더 커진다. 작년에 암 사망자가 고흥은 253명인 데 비해 과천은 70명이었다. 전문가들은 "65세 이상 인구가 1% 늘면 1인당 의료비 지출이 17%가량 늘어난다"고 말한다.

    노인이 많은 곳은 의료기관과 의사가 몰린다. 의사 수만큼 진료비가 늘어 건강보험 재정도 불안해진다. 고흥은 종합병원 2곳, 병원 3곳, 의원 33곳, 치과 12곳, 한의원 17곳이다. 반면 과천은 의원만 29곳이고 치과는 19곳, 한의원은 12곳이다. 의사 수도 고흥(109명)이 과천(74명)보다 훨씬 많다. 약국도 고흥(34곳)이 과천(24곳)보다 많다. 고흥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물리치료가 성행한다. 고흥엔 물리치료사가 44명이지만 과천은 고작 11명만 있을 뿐이다.

    고령화로 인한 건보 재정 불안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건강 보장 제도 개선이나 예방으로 노인 의료비 증가를 완화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권용진 서울북부병원장은 "만성질환은 노인시기 생활습관만 아니라 노년기 이전의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보건 교육과 건강 증진사업이 효율적"이라며 "물리치료 서비스는 횟수를 제한하거나 장기 입원은 본인 부담금을 인상해 억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