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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지켜져야( 이것은 법 고처서)/법은 지키라고 있다

[조선인터뷰]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 오늘 퇴임… 41년 법관·재판관 인생도 '퇴임'

[조선인터뷰]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 오늘 퇴임… 41년 법관·재판관 인생도 '퇴임'

  • 박정훈 사회부장
  • 이명진 기자

    입력 : 2013.01.21 03:02

    "국회 날치기, 개헌 통해 헌재서 제어가능… 종북은 헌법 제1가치에 배치"

    국내 防犯비용 천문학적 액수
    양형 높여 방범 비용 줄여야 흉악범죄 당한 피해자 보호 국가 의무이자 헌법적 가치

    막말 한다고 입까지 봉하면 안돼
    표현 자유, 국민수준 믿어야… 여론에 기댄 재판 안되지만 시대정신도 외면해선 안돼

    6년전 청문회때 약속 지킵니다
    이제 법률공단서 서민 봉사 통일땐 통일헌법 제정에 꼭… 現 세대갈등은 소통이 해답


    2007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소를 이끈 이강국(李康國) 헌법재판소장이 퇴임(21일)을 나흘 앞둔 17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41년간의 법관·재판관 생활도 마감한다.

    21일 퇴임하는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퇴임을 나흘 앞둔 17일 헌법재판소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허영한 기자

    ―41년 만에 법복(法服)을 벗는 소회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과분한 혜택을 받았습니다. 퇴임하면 법률구조공단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공단 분들이 와서 '어떻게 모시면 좋을까요'하며 당혹했기에 '대접받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원봉사는 6년 전 국회 인사청문회 때 약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앞으로 통일헌법 제정에 참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소장 시절 재판한 사건 가운데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미디어법 사건(2009년·국회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따른 권한침해 문제)이 있었는데, 선고하고 나서 국민의 질책을 많이 받았습니다.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한 건 맞지만 법 가결 자체는 무효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는데, '왜 오프사이드인데 골이라고 하느냐'는 질책을 들었지요. 법리적으론 헌법상의 법익인 국회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로선 질책이 좀 억울했지요."

    ―국회의 날치기, 몸싸움을 헌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헌법 개정을 통해 헌재에 '추상적 규범통제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어떤 법률이 통과됐을 때 의회의 일정 세력이 그 법률의 내용과 절차가 위헌인지 아닌지를 헌재에 묻는 제도입니다.

    독일에선 이 제도가 정치적 평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헌재가 필터링(filtering) 역할을 하면 우리 국회가 세계 토픽감이 되는 일이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 연방대법관처럼 우리 헌재 재판관들도 인선 주체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필요 때문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임명된 이후에는 법리(法理)와 시대정신, 정의감 등에 따라 재판해야 합니다. 재판관이나 대법관의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를 너무 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보수라고 하지만, 저는 예를 들어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자는 입장입니다. 그 사안만 따지면 저만한 진보 재판관이 있습니까."

    ―여론이나 국민 정서는 재판할 때 감안하는 요소가 됩니까.

    "요즈음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보다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는 여론에 기대어 재판한다면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여론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해서 시대정신을 외면하라는 게 아닙니다. 재판에는 역사 발전 방향에 대한 인식도 담겨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력이 오래가는 판결이 나오고 사회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 못 하는 '튀는 판결'을 하는 법관들도 '시대정신'을 얘기합니다.

    "판결은 법관 개인이 의견 표명을 하는 장(場)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가 과거 80%를 넘었는데, 작년 발표를 보니 60%대로 떨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대법원 판결이 대법원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법관 개인의 입장 표명에 그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우리도 경청해야 할 대목입니다."

    ―흉악 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이 국민 감정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기가 길다 보니 생계형 범죄자가 많았는데 그 때문에 법관들이 사건을 관대하게 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양형이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크게 변했습니다.

    유흥비 조달형, 축재(蓄財)형 범죄가 늘었고, 특히 흉악범은 엄벌해야 하는데 법관들이 과거 기준에 따르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를 확립하려면 법을 엄정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전 과 4범·5범 이런 경우는 '3진 아웃제'를 도입하든 해서 일정 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합니다.

    또 범죄 때문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큽니까. 예컨대 우리는 '밤손님'이 무서워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문을 꼭꼭 잠그고 자는 게 생활습관이 돼 있습니다. 십수년 전 어느 연구기관 보고서에 '방범(防犯) 때문에 담장 높이고 철조망 치고 하는 비용이 4조3000억원'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자장치까지 하니까 훨씬 더 들겠죠. 일본 사람에게 '당신들은 여름에 문 열고 자느냐'고 물었더니 '왜 못 열고 자느냐'고 반문합디다. 국민이 행복해지려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양형을 높이는 문제는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인권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합니까.

    "그간엔 형사재판이나 형사소송법 학자들이 주로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인권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헌법은 '형사피해자는 당해 사건의 재판 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27조 5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죄가 점차 흉포화함에 따라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 역시 국가의 중요한 의무가 되고 있고, 헌법재판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엔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인사사고를 냈을 때 형사소추가 불가능했지만, 헌재는 위헌을 선고해 '피해자 구제'라는 헌법적 법익을 강조했습니다."

    ―소장 재임 시절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결정이 많았습니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는 SNS 선거운동 규제를 풀었지만, 대선 막판에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약(藥)에도 부작용이 있듯이 자유의 제한을 풀려고 할 때 항상 부작용으로 인한 폐해가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막말, 비방 등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입을 아예 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과거 야간통행금지 해제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대단했지만, 지금 얼마나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까. 우리 국민의 수준과 사회의 건강한 복원력을 믿어야 합니다."

    ―헌법이 용인할 수 있는 이념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이미 실패해 역사에서 사라진 동구권 사회주의, 공산주의, 종북(從北)주의 이런 것들은 용인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극우도 마찬가집니다. 양쪽 극단이 사라지면 헌법의 이념과 가치만이 남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복지, 시장경제 이런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현안이 생길 때마다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풀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헌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유와 권리도 헌법 37조 2항에 의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습니다. 동구권의 사회주의나 종북주의는 헌법 제1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배치됩니다. 저는 왜 대한민국 사람이 썩은 동아줄 잡듯 그런 이념에 연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흐름이 있었지만 그 주동자급들을 소련 관광 보내고, 눈으로 그 실상을 보도록 해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세대 갈등이 부각됐고, 지역감정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세대 갈등을 치유할 캠페인이 있었으면 합니다. 20·30과 50·60이 토론회나 캠핑 등을 같이 가서 방도 같이 쓰고 목욕과 식사도 같이 하면서 도란도란 소통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 지역의 통합을 위해서 '통혼(通婚)정책'을 이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혜안 아닙니까? 우리 지역 감정도 통혼정책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한때는 (퇴임하면) 결혼상담소를 해보려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지역 갈등 해소엔 도(道)를 폐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를 폐지하면 '어느 도 사람'이 아니라 '어느 시(市) 사람' 이 되고, 과거 통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소통의 비결'이 있을까요.

    "우리 사회엔 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못 갖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토론과 대화, 타협의 방법을 배우고 경험하지 못해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봅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토론시간이 정규과목으로 정해져 있고, 고3쯤 되면 '실존주의의 철학은 휴머니즘과 결합할 수 있는가' 같은 주제로 토론합니다. 이들이 대학생이 되면 놀라운 수준의 세미나, 토론이 이뤄집니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대화와 타협, 절충에 대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민주주의도 굳건해질 겁니다."

    이강국 소장은
    스스로 "언행은 보수, 제도개혁은 진보"… 그의 헌재 '표현 자유' 키웠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헌법학자이기도 하다. 우리 헌재의 모델이 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를 종합분석한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이라는 논문으로 1980년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실무위원으로 참여해 처음 헌재와 인연을 맺었다. 소장이 된 이후엔 미국과 독일 중심의 헌법재판 법리나 기준에서 벗어나 동양의 의식과 정서에 맞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등 우리 헌법재판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말도 듣는다.

    스스로 “언행이나 예의범절, 가정사 등에 관해선 보수적이지만 사회제도 개혁에 있어서는 진보적”이라고 말해왔다. 그가 이끈 헌재에선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결정이 많았다. ‘야간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인터넷 실명제 위헌, 인터넷·SNS 선거운동 제한 철폐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군(軍) 내 불온서적 전파·소지를 금지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하는 등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사형수 생명권 못지않게 피해자의 생명권도 중요하다”며 사형제 존속 결정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