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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지켜져야( 이것은 법 고처서)/법은 지키라고 있다

[태평로] '징역 1000년' 미국법에서 배울 것 있다

[태평로] '징역 1000년' 미국법에서 배울 것 있다

  • 김낭기 논설위원

    입력 : 2013.03.12 03:03

    김낭기 논설위원
    미국 조지아주의 한 법원이 인터넷에서 아동 음란물 동영상 2만6000건을 내려받아 갖고 있던 64세 지역 방송사 사장에게 징역 1000년을 선고했다. 며칠 전 국내 언론에 소개된 소식이다. 15년, 20년만 돼도 '세게 나왔다'며 놀라는 우리로선 입이 딱 벌어지는 형량이다. 어떻게 '1000년'이 나왔을까.

    미국은 한 사람이 죄를 여러 건 지었을 때 죄별로 형량을 정한 뒤 합산하는 방식을 쓴다. 이 방송사 사장은 검찰이 음란물 2만6000건 가운데 60건을 골라 아동 성 학대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60건 중 죄질이 나쁜 50건에 대해 1건당 형량을 법정 최고형인 20년으로 정하고 이를 다 합쳐 1000년을 선고했다. 음란물마다 서로 다른 아동 1명씩이 등장했다니 피해자 50명에 대한 죗값을 일일이 물린 셈이다.

    우리는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처벌한다. 여러 죄 가운데 법정형이 가장 무거운 죄 형량의 최대 2분의 1까지 가중(加重)처벌하는 방식이다. 죄를 몇 개 지었든 똑같다. 절도죄 2건, 사기죄 2건, 강간죄 3건을 지은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법정 최고형이 절도죄는 징역 6년, 사기죄는 10년, 강간죄는 30년으로 강간죄가 가장 무겁다. 따라서 강간죄 30년을 기준으로 그 2분의 1인 15년을 더해 최대 45년 범위 내에서 처벌할 수 있다. 미국식으로 한다면 절도죄 2건 12년, 사기죄 2건 20년, 강간죄 3건 90년을 더해 최대 122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우리의 처벌 방식은 유럽식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럽식을 도입했다. 미국식은 영미(英美)법계 국가들이 쓴다. 미국식으로 징역 1000년씩 내리는 것은 기껏해야 100세인 인간 수명을 고려할 때 무의미할지 모른다. 차라리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영미법계 국가들이 이런 처벌 방식을 쓰게 됐을까 하는 점이다. 중요한 설명 중 하나는 범죄를 보는 눈이 유럽 국가들과 달랐다는 것이다. 유럽은 범죄를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봐 왔다. 그래서 사회질서 유지에 적절한 기준을 정해서 처벌해 왔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범죄를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여겨왔다. 그래서 피해를 본 개개인 입장에서 처벌 수준을 정했다.

    영국과 미국의 개인 권리 중시 전통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1690년 영국의 존 로크라는 정치철학자는 "개인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타고났다. 사람들은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과 정부(입법·사법·행정부)를 만들었다. 정부의 가장 큰 의무는 법을 엄정히 지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로크의 철학은 영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도 1776년 발표한 독립선언서에서 로크의 철학을 받아들여 그의 사상을 건국의 기초로 삼았다.

    우리가 갑자기 미국식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은 가장 소중한 권리이고 정부의 의무는 법 제정과 집행을 통해 이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그들의 철학은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유치원생이 학원 승합차 문에 옷이 끼여 끌려가다 바퀴에 치여 숨지거나 주부가 자기 집 안방에서 성폭행당하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사람의 소중함과 정부의 의무를 보는 눈이 미국의 절반 수준만 돼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