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재/ 세계정세

[특파원 칼럼] 시진핑 총서기의 '말'

 

  • 최유식 베이징 특파원

    입력 : 2012.11.23 23:03

    최유식 베이징 특파원

    국민당과 공산당의 1차 국공(國共)합작이 결렬되고 상하이 등지에서 공산당원들이 학살된 직후인 1927년 8월 중국 공산당은 우한(武漢)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8·7회의'로 불리는 이 회의에 후난(湖南)성 대표로 참석한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 중에서 가장 화려한 연설가이자 문장가였다. "여성이 하늘의 반을 머리에 이고 있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 "조사해 보지 않은 자는 말할 권리가 없다" 등의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덩샤오핑은 마오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 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이 말을 앞세워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냈다.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제도[一國兩制]'라는 말로 대만·홍콩을 한 국가의 틀에 묶어둔 것도 그였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뜻을 말단 행정 단위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정치가들이 단순하고 쉬운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려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에는 이런 정치가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장쩌민 전 주석이나 후진타오 주석은 말에 서툴렀다. 그들의 연설은 딱딱하고 난해한 관료식 용어 일색이었다. 그나마 장 전 주석과 함께 일한 주룽지 전 총리는 어록을 남겼다. 1998년 그는 반(反)부패 관련 회의에서 "여기 100개의 관(棺)을 준비했다. 99개는 탐관(貪官)의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나를 위해 남겨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의 지난 15일 기자회견 연설이 호평을 얻고 있다. 그가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 후 처음 한 연설에는 전임자들의 판에 박힌 관료식 어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국민(인민)은 더 좋은 교육과 더 안정적인 일자리, 더 만족스러운 수입, 더 믿을 만한 사회보장, 더 나은 의료위생 서비스를 희망한다. 국민의 행복한 생활이 우리가 분투하는 목표"라고 말했다. 서방 지도자의 연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구절이다. 당 간부들을 향해서는 "강철을 만들려면 우리부터 단단해져야 한다"는 말로 부패를 경계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선 덩샤오핑 이래 맥이 끊긴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시 총서기는 취임 전부터 직설적이고 의도가 분명한 화법을 선보였다. 2009년 멕시코 방문 때는 중국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서방을 향해 "중국은 혁명도, 기아도, 빈곤도 수출한 적이 없다. 밥 먹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고 반박했다. 2010년 중앙당교 춘계 입학식에서는 "길고[長], 공허[空]하며, 거짓[假]이 많다"는 단 세 마디 말로 당내 문서와 연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말을 다룰 줄 아는 지도자가 집권했을 때 격동기를 맞았다. 시진핑의 말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