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손흥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영리했다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뒤 프리시즌에서 맹활약한 손흥민이 2013~2014시즌 독일분데스리가 첫 경기부터 인상적인 골을 넣었다. 홈에서 열린 프라이부르크전에서 손흥민은 1-1로 맞선 후반 1분 시즌 1호골을 터뜨렸다. 팀은 3-1로 승리했고 손흥민의 골은 결승골이 됐다. 홈에서 열린 시즌 첫 경기에서 값진 승리를 결정지은 게 손흥민의 골이었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참으로 좋은 시나리오였다.손흥민의 골은 영리한 두뇌로 만들어진 골이었다. 팀 동료 샘에게 날아가는 패스도 좋았고 물론 샘의 어시스트도 훌륭했다. 그러나 골의 시작과 끝은 분명히 손흥민이었다. 그건 손흥민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프사이트의 약점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뒤 터뜨린 골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의 발도 빨랐지만 그것보다는 영리하고 두뇌로 만든 골이라고 보는 게 옳다.위 그림은 샘이 처음으로 패스를 받는 장면이다. 빨간 색 원안이 샘이고 검은 색 원안이 손흥민이다. 위치로만 따지면 손흥민은 분명히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 2005년까지는 이 장면은 오프사이드로 선언됐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오프사이드 룰이 개정됐다. 개정된 룰에 따르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어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오프사이드로 보지 않는다. 그게 이번 장면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부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지 않은 건 정확한 판정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손흥민이 수비수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손흥민이 수비수와 충돌했거나 수비수의 길을 막았다면 그건 오프사이드가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수비수와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샘이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고 패스를 받는 장면을 봤다. 동시에 손흥민은 상대 수비수보다 반발 앞서 스타트를 끊었다. 손흥민은 참 영리했다.
두 번째 장면은 샘이 손흥민에게 어시스트를 해주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은 검은 색 원안에 있는 손흥민 위치다. 오프사이드 룰에 따르면, 상대 수비수(골키퍼 포함)가 1명 또는 0명일 때 오프사이드의 기준은 공이 된다. 즉, 손흥민이 공보다 앞에서 패스를 받으면 오프사이드이고 뒤에서 볼을 잡으면 온사이드다. 손흥민은 분명히 공 뒤에서 위치하면서 골문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샘의 패스를 받는 순간 역시 손흥민은 공보다 뒤에 있다. 따라서 손흥민이 슈팅하는 순간은 분명히 온사이드다.
샘은 자기 진영에서 패스를 받아 드리블하면서 뛰기 시작했고 그 순간 손흥민은 분명히 샘보다 앞서 출발했다. 그러나 주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한 손흥민은 냅다 앞으로 뛰어 들어가지 않았다. 손흥민은 드리블돌파를 하는 샘보다 약간 뒤에서 뛰어 들어갔다. 손흥민이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냅다 골문으로 뛰어 들어갔다면 샘보다 앞서 달렸겠고 그랬다면 샘으로부터 어시스트를 받는 순간 오프사이드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은 샘의 위치를 보면서 샘보다 약간 뒤쳐져 달렸고 샘이 어시스트하는 순간에도 손흥민은 샘보다 뒤에 있었다. 손흥민은 오프사이드 룰을 확실히 이해했고 그걸 몇 초 안 되는 찰나의 순간 완벽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손흥민은 골을 넣자마자 샘과 기쁨을 나눴다.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해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샘이 골을 넣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골문으로 더 치고 들어간 뒤 슛을 날릴 수 있었다. 그래도 샘이 골을 넣을 가능성은 꽤 높았다. 그러나 샘은 골 욕심을 버렸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손흥민에게 어시스트를 해줬다. 공격수는 공격수들끼리 통한다. 샘이 그대로 슈팅을 해도 괜찮은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해준 걸 손흥민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골을 넣자마자 처음으로 머리에 떠오른 게 샘이었다. 샘은 국가대표에도 뽑힐 만큼 지명도와 존재감이 큰 선수다. 그와 첫 골을 만들어냈고 또 그의 도움으로 마수걸이 골을 터뜨린 뒤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건 참으로 잘한 행동이다. 골 넣을 때못지 않게 골을 넣은 뒤 보여준 손흥민의 행동도 너무 영리했다. 샘과 손은 서로 기쁨을 나눈 뒤 나란히 관중석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환호하는 홈팬들과 환희를 함께 했다. 유니폼 뒤 '샘' '손' 이라는 성이 눈에 띄었다. 독일 언론이 기대감을 표현한 것처럼 좌우날개 '샘-손' 은 첫 경기부터 불을 뿜은 것이다. 레버쿠젠이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인 1000만유로(약 150억 원)을 들여 손흥민을 데려온 게 헛된 게 아니었다는 걸 손흥민은 첫판부터 입증했다. 손흥민의 다음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