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0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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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특별취재부 차장

요시나가 유스케는 1976년 도쿄(東京)지검 특수부 부부장 시절 전후(戰後) 일본 최대의 부정부패 스캔들이라는 록히드 사건을 수사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을 구속했고, 도쿄지검 검사정(檢事正·우리나라의 검사장급) 시절엔 또다른 대형 정경유착비리 사건인 리크루트 스캔들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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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케 日 前검찰총장/ 조선일보DB
존경받던 일본 검찰 원로 ‘미스터 검찰’과 도쿄지검 특수부 神話
이런 이력 때문에 ‘미스터 검찰’ 혹은 ‘미스터 특수(特搜·특별수사)’로 불렸고, 그의 명성에 발맞춰 도쿄지검 특수부도 ‘최강의 사정(司正)기관’이라는 말을 듣는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96년 1월 그가 퇴임하자 일본 언론은 “우리는 오늘 한명의 뛰어난 검사를 잃은 대신 또 한명의 훌륭한 원로를 얻었다”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세상을 뜬 이웃나라 검사의 사연을 소개한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어서입니다. 부실(不實) 수사나 검사 비리 사건, 정치적 중립 시비 등이 불거져 한국 검찰이 위태로운 시기를 맞을 때마다, “일본 검찰에서 배우라”며 우리 언론이 단골 비교 대상으로 삼은 인물과 기구가 각각 ‘미스터 특수’ 요시나가이며, 그가 이끌었던 도쿄지검 특수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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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정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조선일보DB
일본 검찰의 신화(神話) 붕괴는 2010년 정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불기소처분했다가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의 기소결정으로 일대 망신을 당한 일, 같은해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검사가 압수 증거물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요시나가의 말 가운데 “검찰은 오물이 고여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 검찰의 몰락 이유를 설명해주는 말이자, 우리 검찰도 새겨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말 검란(檢亂) 사태로 “지하실까지 떨어졌는데, 그 다음은 어디로 추락하나”라는 말까지 나왔던 게 우리 검찰의 현주소이지만, 60년을 훌쩍 넘는 검찰사(史)에도 일본의 요시나가처럼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미스터 검찰’ ‘미스터 특수’가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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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교 전 서울지검장/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깝게는 2002년 ‘이용호 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검찰 수뇌부가 사퇴하자 소방수 역할을 맡았던 이명재(李明載·70) 전 검찰총장과 강골(强骨) 검사의 대표 격인 심재륜(沈在淪·69) 전 고검장도 검사 후배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진정한 무사(武士)는 추운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한 초대 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인 심 전 고검장은 대검 중수부장 시절인 1997년 “각하가 울고 있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압력 속에서도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씨를 구속한 일로 유명합니다. 타협을 모르는 검사로서의 결기가 ‘심통’이라는 그의 별명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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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전 검찰총장/ 조선일보DB
그렇지만 ‘불명예 퇴진’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공직자로서 진퇴가 분명한 그의 깔끔한 처신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인권 수호기관인 검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전격적으로 사표를 던졌습니다. 동반퇴진한 법무장관의 퇴임사가 그의 퇴임사를 거의 베끼다시피했을 정도로 퇴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당시 법무부는 “퇴임사 문제는 실무자의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검찰 출입기자 시절 여러 총장들의 취임사·퇴임사를 접했지만, 이 전 총장의 취임사처럼 울림이 길게 남은 게 없었던 듯합니다. 그는 “진정한 무사(武士)는 추운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후배들에게 도덕성과 명예를 소중히 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 말대로 퇴임 이후 그는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법무장관, 감사원장 후보 등에 단골로 거론됐지만, 곁눈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후배 검사들이 한번쯤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들은 곧잘 수사(搜査)를 생물(生物)에 비유합니다. “수사는 살아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식입니다. ‘접시 돌리기’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을 합하면 수사란, 살아서 움직이는 접시의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면서 깨지지 않게 돌려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접시돌리기 묘기를 수행하는데는 외압(外壓)에 맞서는 결기와 정의감도 중요하지만 기본 중 기본은 수사가 이런 저런 벽에 부닥쳤을 때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법률가로서의 실력을 쌓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력도 없이 공명심에 불타는 검사만큼 위험한 존재(요시나가는 이런 검찰을 ‘파쇼’라고 말했습니다)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요즘 검찰, 수사실력이 예전만 못하다. 검사들이 예전처럼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검찰 선배들과 외부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지난달 만났던 한 검찰 고위직 출신 원로 법조인은 “어떤 검사가 피의자를 불기소하기로 했는데, 불기소장(狀)을 쓸 줄 몰라서 변호인에게 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더라. 이게 무슨 경우인지…”하면서 혀를 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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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 뉴스1
허공으로 상승한 접시들이 회전력의 클라이맥스를 뽐낸 뒤 안착해 국민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판가름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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