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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지켜져야( 이것은 법 고처서)/성추행(주의)+몰카

[클릭! 취재 인사이드] 청춘 사업인가, 성범죄인가? 두 개의 강을 구분하는 잣대는?


[클릭! 취재 인사이드] 청춘 사업인가, 성범죄인가? 두 개의 강을 구분하는 잣대는?

  • 최연진·사회부 기동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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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02 03:03

    
	최연진 사회부 기동팀 기자.
    최연진 사회부 기동팀 기자.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이 이야기는 ‘진리’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몇년 새 성폭력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법원은 이제 성관계를 목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해 ‘강압’을 가하는 남성에게 쇠고랑을 채웁니다. 열번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억지로 찍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정에 선 남성들은 “아니, 이게 왜 성폭행이고 유인이에요?”라고 항변합니다. 피의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인정하게 해야 하는 법원으로선, 이들을 설득하는데 매번 애를 먹는다고 합니다. 재판을 방청하는 취재기자 입장에서도 ‘이건 좀 애매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올해 5월 서울남부지법은 강간미수 및 간음유인 혐의로 기소된 직장인 이모(32)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씨의 죄목은 심각해 보입니다만, 내용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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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에서 날로 엄격해지고 있는 성폭력 ‘기준’

    사건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의 BMW승용차를 몰고 새벽 5시30분쯤 대구의 한 거리를 지나던 이씨는 길가에 서 있는 A(16)양을 발견했습니다. 이씨는 A양이 미성년자인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A양에게 “집에 가는 길인데, 같이 우동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90년대 ‘야타족’이 길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차에 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됩니다.

    A양은 처음엔 이씨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가는 곳까지 태워다 주기만 할 테니 안심하라”는 이씨의 말에 차에 올라탔습니다. 이씨는 약속과 달리 인근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A양은 그러나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씨가 차를 몰고 모텔로 가 “옆에서 잠만 재워줘. 금방 잠들 것 같은데, 옆에만 있어주면 돼”라고 말하자 방 안으로 따라들어가 이씨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이후 이씨는 A양을 억지로 눕히고 볼에 뽀뽀를 하거나 옷 안에 손을 넣어 허리 부분을 만졌습니다. A양은 강하게 저항한 뒤 모텔방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이씨는 A양이 도망치자 ‘원나잇 스탠드’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A양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힙니다.

    재판 내내, 이씨는 자기의 ‘행위’는 인정했지만 자기의 ‘혐의’는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법정에서 이씨는 일관되게 억울함을 표했습니다.

    “모텔에 들어간 것도 맞고, 성관계를 가지려다 A양이 거부해 그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양이 미성년자인 것을 몰랐고, 모텔까지 같이 들어간 것은 성관계를 할 수도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 아니냐”고 펄펄 뛰었습니다. 또 A양이 원하지 않아 성관계 시도를 중단했기 때문에 강간미수죄도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씨는 “옆에만 있어달라”는 말이 TV에 농담처럼 등장하는 ‘손만 잡고 잘게’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법원의 판단은 이씨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A양으로부터 성관계를 갖기로 동의를 받은 적도 없고, 단순히 잠만 자겠다는 거짓말까지 않았느냐”며 “심지어 약혼녀까지 있는 이씨가, 자기 신원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A양을 모텔로 데려간 정황은 간음목적 유인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이씨가 ‘열번 찍은’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다 A양을 간음할 목적으로 유인했다는 죄목을 증명해주는 증거로 활용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간음 목적’의 ‘유인’은 여성을 입을 막거나 술을 왕창 먹여 모텔로 끌고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법은 생각 보다 훨씬 엄격합니다. ‘유인’에는 ‘유혹’도 포함됩니다. 성관계를 원치 않는 여성을 수차례 졸라 ‘유혹’한 경우도 ‘유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모텔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성적 접촉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폭행을 목적으로 유인한 혐의가 인정되면 중형이 선고됩니다.

    지난해 9월 스마트폰 채팅앱으로 B(19)양을 만난 황모(30)씨는 “갈 곳이 없으면 수원에 있는 내 집에서 지내게 해 주겠다. 나는 일 때문에 한동안 집을 비울 예정”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성폭력 용의자들, “사랑도 죄가 되느냐”고 항변담당 판사들도 고민 깊어

    황씨의 집은 수원도 아니었고, 일 때문에 집을 비울 계획도 없었죠. B양은 황씨의 차에 스스로 탔지만, 뒤늦게 겁을 먹고 “내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황씨는 B양을 내려주지 않고 3시간 넘게 차를 운전해 다녔습니다. B양은 황씨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차에서 도망쳐 황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이후 법정에 서게 된 황씨는 “성관계를 가질 마음으로 우리 집 앞까지 가기는 했지만, B양이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부해 혼자 들어갔다가 나왔다. 자꾸 길 한가운데에서 내리려고 해 내려주지 않기는 했지만, B양을 강제로 차에 태운 적은 없다. 성폭행은 시도도 안했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거짓말을 해 B양을 차에 태웠고, 내려달라는 데 내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입을 틀어막지 않았느냐”며 황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황씨가 성관계를 가질 목적으로 B양을 납치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은 ‘남녀가 모텔에 들어갈 때에는 당연히 성관계를 하겠다는 합의가 전제된 것 아니냐’는 변명이 먹히지 않는 때입니다. 모텔이 아니라 모텔 할아버지에 들어가도 여성이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거나 “성관계를 갖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성관계를 해도 좋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가 없었다면 이후부터의 ‘찍기’는 성폭력이 됩니다.

    수사기관 내부에서조차 “잠만 재워달라는 말을 믿었단 말이냐” “낯선 남자 집에 선뜻 가겠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곤 합니다. 네, A양은 그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B양 역시 “집이 비니까 나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답니다. 낯선 남자를 왜, 어떻게 믿었냐고요? 경솔한 행동이었을 수는 있으나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닙니다. 이를 반박할만한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입니다.

    여전히 이 같은 법의 잣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남성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반발합니다.

    성폭력을 전담으로 하는 판사들은 고민이 큽니다.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사랑해서 그랬다. 사랑도 죄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성폭력범을 마주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 합니다.

    자로 대고 선을 긋듯 어디까지는 성범죄, 어디까지는 청춘사업이라고 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판사가 가장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오’는 ‘아니오’로, ‘예’는 ‘예’로, ‘글쎄’는 ‘아니오’로 해석하면 됩니다. ‘No’를 자기 마음대로 ‘Yes’로 해석하는 사람만 성범죄자입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