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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골프

[박인비 63년만의 대기록] 우즈·파머·소렌스탐도 못이룬 위업, 그녀가 해냈다


[박인비 63년만의 대기록] 우즈·파머·소렌스탐도 못이룬 위업, 그녀가 해냈다

  • 민학수 기자


  • 입력 : 2013.07.02 03:00

    박인비 '시즌 개막 후 메이저 3연승' 대기록…
    브리티시오픈 우승 땐 여자골프 사상 첫 '시즌 그랜드슬램'

    美언론 "조용한 그녀가 새 역사 향해 걸어가고 있다"
    소렌스탐도 "인비, 계속 성장 가능성… 그게 참 무서워"
    올 시즌 6승으로 한국선수 시즌 최다승 기록도 경신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박인비(25)가 세 번째 샷을 한 뒤 환호하는 팬을 향해 한 손을 수줍게 들어 올리며 18번홀(파5) 그린을 향해 걸어가자 TV 해설가는 "조용한 그녀가 새로운 역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1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세보낵 골프장(파72·6821야드)에서 막을 내린 제68회 US여자오픈에서 박인비는 '시즌 개막 후 메이저 대회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63년 만에 이뤄진 기록이다. 마지막 홀에서 파를 기록한 박인비는 합계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하며 김인경(4언더파)을 4타 차로 이기고 우승했다. 3위도 역시 한국의 유소연(1언더파)이었다.

    
	최나연·유소연의 축하 샴페인 세례… 1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세보낵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 4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 박인비(오른쪽)의 우승이 확정되자 동료 최나연(왼쪽 뒤)과 유소연이 축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최나연·유소연의 축하 샴페인 세례… 1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세보낵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 4라운드 18번홀 그린에서 박인비(오른쪽)의 우승이 확정되자 동료 최나연(왼쪽 뒤)과 유소연이 축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AP 뉴시스

    평소 여자 골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미국 언론들도 박인비가 골프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자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차분하면서도 승부에 강한 그녀가 역사적 위업을 향해 걸어나가는 모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박인비의 사진과 함께 '그녀만의 리그'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ESPN은 "박인비가 자하리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여자 골프가 현재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은 근대 골프에서는 처음으로 시즌 개막 후 메이저 3연승 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자하리아스가 이 기록을 세웠을 때는 한 시즌에 메이저 대회가 3개만 열렸다. 메이저 대회가 4개 이상으로 늘어난 이후 여자 골프에서 메이저 3연승을 한 선수는 박인비가 유일하다.

    CBS스포츠는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 안니카 소렌스탐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박인비가 해냈다"고 썼다. 남자 골프에서는 보비 존스가 1930년 당시 4대 메이저 대회(US오픈, US아마추어선수권, 브리티시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선수권)를 한 시즌에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유일하게 달성했다. 벤 호건은 1953년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 오픈을 내리 우승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60년간 우즈와 니클라우스, 파머, 소렌스탐 등 남녀 골프의 전설들이 시즌 개막 후 메이저 3연승에 실패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올해부터 에비앙 마스터스를 포함해 5개 메이저 대회 시스템으로 바꿨다. 박인비가 다음 달 1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할 경우 여자 골프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4개의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게 된다. 미국 언론들은 5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4개 대회를 우승할 경우, 이를 그랜드슬램으로 불러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USA투데이는 "우선 용어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랜드슬램으로 할 건지, V슬램으로 할 건지, 펜타 슬램으로 할 건지 정해야 한다"며 "박인비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따른다면 '다섯(Da-seot) 슬램'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는 타이거 우즈가 2000년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부터 이듬해 마스터스까지 4연속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놓고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던 것과 흡사하다. 당시 미국 언론은 우즈의 이름을 딴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LPGA투어는 한해 5개의 메이저 대회 중 4개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전설'들의 한 시즌 메이저 연승 기록 표
    이날 경기를 중계한 NBC 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 시즌 그랜드슬램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박인비는 "오, 이제 그랜드슬램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세요" 하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박인비는 "즐거운 도전이라고 생각하겠다"며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 나는 올 시즌 그랜드슬램을 이뤘다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 6승째를 올린 박인비는 박세리가 갖고 있던 한국 선수 시즌 최다승 기록(5승)과 시즌 최다 메이저 우승 기록(2승)도 경신했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세리 키즈' 박인비가 한국 여자 골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박인비는 2008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이후 5년 만에 3개 대회 연속 우승 기록도 세웠다. 단일 시즌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은 1978년 5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낸시 로페즈(미국)가 보유하고 있다.

    이날 골프 채널 해설을 맡았던 '골프 여제' 소렌스탐(스웨덴)은 "박인비는 몇몇 부분에서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게 참 무서운 점"이라고 격찬했다. 소렌스탐은 트위터에 "인비 정말 축하해. 너의 모든 샷을 지켜봤고 감동받았고 행복했어. 이 역사적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는 축하 글을 남겼다.

    우승 트로피에 두 번째로 이름을 새기게 된 박인비는 "열아홉이던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며 "자하리아스 같은 위대한 이름 옆에 내 이름이 새겨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