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13 03:03
이재원 조선비즈 산업부 기자


최근 저녁 자리를 함께 한 서울 시내 비뇨기과 전문의가 한 말입니다. 발기부전치료제나 조루치료제 같은 ‘남성용 약’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값이 싸졌고 이런 약을 적극적으로 구입해 쓰려는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①남성용 약은 ‘뜨거운 밤’만을 위한 약?
성인들에게 성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 관계를 좌우하는 큰 요소이며, 남성이 사회생활을 얼마나 자신있게 하느냐와도 관련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호주에서 진행된 최근 조사를 보면, 환자들이 발기부전 치료를 하려는 이유는 ‘성 관계를 갖기 위해(35%)’
보다는 ‘발기부전 이전 상태의 삶으로 돌아가 남성적 자신감을 되찾기 위함(65%)’을 더 많습니다. ‘시드니 맨즈 헬스’의 창업자이자 남성의학
전문의인 마이클 로위 박사는 “발기부전 치료를 성생활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남성 심신 전반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식 발기부전치료제 덕분에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각종 불법 정력제도 크게 줄었습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국내에 들여오다 적발된 건수는 116건으로 전년보다 23.7% 줄었습니다.
2011년 1154억원이던 가짜 약 밀수 규모는 61억원으로 95%나 감소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비아그라 출시 후 알래스카 순록의 뿔이나 물개의 성기(性器)처럼 정력제로 알려진 것들의 유통이 확 줄었고 야생동물 보호에 기여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출처=헬스조선 DB

②오·남용과 성병 확산 같은 부작용도
하지만 발기부전치료제 확산에 따른 부작용도 제법 많습니다.
먼저 의약품 오남용 입니다. 발기부전치료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라 아주 무분별하게 사용될 우려는 적지만, 요즘 시중에서
발기부전치료제를 예전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제약·바이오 분야를 맡고 있다 보니 “그 약 구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약을 구해달라는
사람은 줄고, 오히려 “약을 먹어 봤더니 이렇더라”며 기자에게 경험담을 전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발기부전치료제 사용 증가로 성병이 퍼질 우려입니다. 지난해 초 영국의 한 의학저널에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자료를 인용해 2000년에
45~64세 연령대의 매독 환자가 900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2500명으로 늘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2010년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이 141만명의 자료를 분석해 발기부전치료제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성병에 걸린 빈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여러 가지 발기부전 치료제. / 조선일보 DB

③한국은 ‘발기부전치료제 공화국’?
우리나라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은 성장하는 중입니다. 지난해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은 전년 보다 9%쯤 늘어 1181억원 규모가 됐습니다. 발기부전치료제가 나오면서 한약방이 문을 다 닫게 생겼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발기부전치료제 강국’이라고 불릴 만큼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허가를 받은 발기부전치료제는 6종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가 내놓은 비아그라(화이자)와 씨알리스(릴리), 레비트라(바이엘)를 제외하면 나머지 3종은 우리나라 제품입니다.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SK케미칼의 엠빅스, JW중외제약의 제피드이죠. 전 세계 공인 발기부전치료제 제품 수의 절반을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신약 종류 외에도 우리나라는 복제약(複製藥)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불릴 만큼 수십종의 많은 비아그라 복제약이 있습니다. 의약품을 개발하면 일정기간 특허로 보호를 받고, 그 특허 기간이 끝나면 복제약을 만들어도 됩니다. 지난해 비아그라의 특허 기간이 끝나면서 국내에서 복제약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보그라’, ‘누리그라’, ‘프리야’ 같은 낯뜨거운 혹은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제품들이죠.
우리나라는 복제약을 오리지널 제조사에 역수출하는 진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서울제약은 비아그라를 혀끝에 올려 녹여 먹는 필름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제품은 비아그라를 개발한 화이자에 납품돼 ‘비아그라 엘’이라는 제품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 등은 가루 형태로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국내 전체 판매금액의 절반 정도를 비아그라와 그 복제약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제약의 약값이 비아그라 정품의 절반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팔린 약 개수는 크게 늘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약을 누가 다 먹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과열 경쟁으로 소송전도 일어났습니다. 화이자는 한미약품이 만든 비아그라의 복제약 ‘팔팔정’이 비아그라의 디자인을 베꼈다며 소송을 냈지요.
④발기부전치료제 뜨니 조루치료제도 등장
발기부전치료제에 대한 인지도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다 보니 다른 분야 약품도 시장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루치료제가 그렇습니다. 기존에도 국내에 먹는 조루치료제(얀센의 프릴리지)가 한 제품 출시됐었는데 별로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발기부전치료제가 시장성이 있는 것을 확인한 제약사들이 조루치료제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뛰어드는 것입니다. 먼저 이탈리아 제약사인 메나리니는 얀센의 프릴리지 판권을 넘겨받아 판매를 시작하면서 가격을 30% 낮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내 제약사인 씨티씨바이오도 올 3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조루 치료제를 이달 중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의 판권은 국내 5개사가 갖고 있는데, 이들은 약값을 프릴리지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대형 제약사와 판매 제휴 등으로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비아그라로 구축한 영업망이 있는 회사의 경우, 조루치료제를 팔기도 쉬울 거라고 보고있습니다. 발기부전과 조루치료제가 동시에 팔리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발기부전 환자가 조루 증상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여하튼 앞으로 ‘남성용 약’ 시장이 더 커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⑤발기부전치료효과, 알고보면 부작용?
그럼 이런 약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재미있는 것은 원래 그 용도로 개발한 약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비아그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화이자는 원래 고혈압약을 개발하다가 실데나필이라는 성분을 찾았고, 관련 임상시험을 했는데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꾸 발기가 된다고 부작용을 호소한 겁니다. 화이자는 방향을 바꿔 발기부전치료제로 개발을 시작했고 마침고 성공했습니다.
씨티씨바이오의 조루치료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약의 주성분은 원래 우울증치료제에 쓰이던 성분입니다.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은 지속적으로 먹을 경우 사정(射精)이 잘 되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씨티씨바이오는 다른 부작용이 없으면서 사정을 늦춰주는 효과가 있을만한 최적의 용량을 찾아 조루치료제로 개발해 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가 ‘남성용 약 공화국’이 돼가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하지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없애려고 노력한다면 이런 현상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고개숙인 남성이 삶의 활력을 찾는 일은 웬만한 질병의 치료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좋은 제품이 계속 나오면 세계 시장에서 큰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동아제약의 경우, 이미 자이데나를 직접 수출하고 있습니다. 동아제약은 이 약이 폐동맥 고혈압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치료제 출시를 목표로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하고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허가를 신청해 놓았는데, 관련 허가를 받는다면 매출 급성장이 예상됩니다. 한가지 제품 원리로 여러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셈인데, 잘만 되면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분별한 남용(濫用)을 줄이는 일 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 환자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다행히 아직 큰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예방책이 언젠가 국민 건강을 해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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