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07 03:00
휴대전화에 사진 내려받은 뒤 수시로 꺼내 보며 얼굴 익혀
순찰 중 마주친 '낯익은 얼굴' 담배꽁초 버리자 "신분증 내라" 타액 묻은
꽁초까지 수거…
범행 장소인 빌라 계단은 어두웠다. 머리카락 같은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서라고는 골목에서 찍힌 CCTV 영상 하나가 전부였다. CCTV에 잡힌 인물은 검은색 양복에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1주일이 지나도 사건은 오리무중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순찰대 소속 최병하(45) 경위는 이 사건 수사팀이 아닌데도 CCTV에 잡힌 인물 사진을 휴대폰에 내려받고 수시로 꺼내 봤다. 범인이 현장 부근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오전 2시 30분쯤 최 경위는 여느 때처럼 서울 강남대로를 순찰하다 20~30여명의 인파 속에서 '낯이 익다' 싶은 40대 남자와 마주쳤다. 휴대전화 속 바로 그 얼굴이었다. 체형은 화면보다 조금 마른 듯했다. 검은색 옷을 입고 가방을 멘 그는 범행 현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50m가량 뒤쫓던 최 경위는 이 남성이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가갔다. 최 경위가 "아저씨, 여기 꽁초를 버리면 어떡해요? 신분증 좀 봅시다"고 하자, 남자는 "저는 청담동 성형외과 원장인데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최 경위는 "아내를 데리고 갈 테니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고 해서 명함을 받고 남자를 돌려보냈다. '캐나다 여강사 성폭행 사건' 용의자 홍모(44)씨의 덜미가 잡힌 순간이었다.
최 경위는 홍씨 타액이 묻은 담배꽁초를 비닐팩에 챙겨 지구대로 돌아와 과학수사반에 분석을 의뢰했다. 명함에 적힌 정보 등은 따로 정리해 첩보 보고서 형태로 올렸다.
첩보를 입수한 서초서 강력팀은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성형외과를 덮쳐 홍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홍씨는'원장'을 사칭한 성형외과 사무장이었고, 성폭행 등 전과 7범이었다. 그는 "당시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고, 성추행은 했지만 성폭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E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홍씨를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최 경위의 강력형사 뺨치는 감각이 미제(未濟)가 될 뻔했던 성폭행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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