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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음식)/발로뛰어 찾은 숨은 맛집(전국)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⑬ 대구시 북구 서변동 '맛찬들 왕소금구이'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⑬ 대구시 북구 서변동 '맛찬들 왕소금구이'

  •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입력 : 2011.04.04 09:07

"국민육류 삼겹살, 맛있는 집 어디 없나요?"

“문제는 숙성이야, 바보야!”

대학시절인 80년대, 동기들과 가끔 들르던 학교 앞 학사주점 벽에서 새로운 안주 이름을 발견하였다. 거기엔 주인 아주머니의 삐뚤빼뚤한 서체로 ‘삼겹살’이라고 씌어 있었다. 당시의 자세한 가격이나 맛은 생각나지 않지만 살점과 지방층이 정확하게 3층 모양을 한 돼지고기를 보고 우리 모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늘 돈이 궁했던 어린 대학생들의 아지트에까지 차례가 왔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삼겹살이 그다지 고급 고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삼겹살을 좋아한다. 돼지고기 중 가장 많이 팔리는 부위가 삼겹살이다. 사실 삼겹살이 ‘국민고기’로 등극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식당가에서 삼겹살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츰 인기가 올라가더니 외환위기사태가 터지면서 삼겹살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애당초 쳐다보지도 않던 삼겹살이 이젠 돼지고기 중에서 최고급 부위로 올라선 것이다. 요즘에는 시내 어디를 가도 쉽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삼겹살을 취급하는 식당이 아주 많다. 그런데 막상 삼겹살 잘 하는 곳을 찾으려면 쉽지 않다.

고기의 육질은 ‘올바른 숙성’ 여부가 관건

대부분의 고깃집들이 ‘신선한 생고기’를 다투어 홍보하는데 대구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맛찬들 왕소금구이>의 주인장 이동관(42) 씨는 숙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숙성이야말로 제대로 된 맛있는 고기로 만드는 관건이라는 것이다. 지방층인 마블링의 양과 분포상태 위주로 매겨지는 기존의 등급 판정은 참고자료일 뿐, 육질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보다는 근본적으로 육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숙성상태가 오히려 육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라는 것. 아울러 지방의 고소함을 즐기기 위해 마블링을 선호하는 식습관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식당주인이나 손님이나 ‘등급 등급’하는데, 등급도 등급이지만 숙성을 제대로 해야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면서도 미각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육질을 만드는 숙성조건과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고기를 숙성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고기의 육질과 맛과 색깔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도살 직후의 고기는 경직된 상태다. 그러나 숙성을 시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백질 조직이 차츰 끊어지면서 고기가 연해진다. 또한 고기 속의 단백질이 가수분해하면서 핵단백의 분해산물과 아미노산이 생기는데 이 물질이 구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이와 함께 글리코겐도 분해되면서 젖산을 형성하는데 젖산도 단맛이 있는 물질이어서 고기 맛을 더 좋게 한다. 고기가 숙성하면 그 과정에서 공기 중의 산소가 고기 속에 유입되면 미오글로빈(myoglobin)이란 성분이 옥시미오글로빈(oxymyoglobin)으로 변하면서 원래의 붉은색이 차츰 먹음직스런 선홍색으로 변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삼성 에버랜드 조리실장과 푸드스타일리스트, 육가공업체 간부 출신답게 고기에 대한 안목이 높은 그의 태도는 명쾌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모든 고기를 숙성시킨다. 돼지고기는 사후경직이 2~3일 정도 지나야 풀리는데 이 집에서는 목살의 경우, 10~12일간 진공 포장상태에서 숙성시킨다. 숙성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기에 사선으로 칼집을 낸다. 산소가 고기의 전 부위에 넓고 고르게 접촉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이렇게 하면 구울 때 열기가 고기 속에 고르게 스며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워도 흐트러짐 없는 3.5cm 숙성육의 육질과 맛

숙성실에서 삼겹살과 목살을 꺼내 구웠다. 가스 착화식 숯불구이였다. 칼집 자국이 있는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주인장이 칼집과 어긋나게 잘랐다. 이렇게 하니 골고루 잘 익기도 했지만 모양도 신선해보였고 먹음직해 보였다. 얼핏 보면 전통한과인 타래과와 모양이 비슷하다. 숙성이 잘못된 고기는 조직이 깨져서 구울 때 고기 밖으로 물기가 나오고 불판 바닥을 허옇고 지저분하게 만든다. 그런데 굽는 내내 불판 바닥이 깨끗했다. 삼겹살을 두툼한 놈으로 한 점 입안에 넣었다. 육즙이 굽는 과정에서 유실되지 않아 고소한 풍미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고깃점이 구워지는 동안에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구워졌다. 불판을 새로 갈 필요도 없이 바로 목살을 구웠다. 씹을 때마다 육질의 탄력이 느껴졌다. 예전에 먹었던 퍽퍽한 목살이 아니었다. 3.5cm 정도로 워낙 두껍게 잘라 구워 식은 뒤에 먹어도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어 뻣뻣하지 않다.

필자와 같이 방문한 일행 중 한 사람은 원래 돼지고기를 잘 안 먹는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2인분 이상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쓱싹 해치웠다. 고기의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하면서.

주인장 이씨의 소금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이 집 상호에도 들어갈 만큼 신경을 써서 만드는 것이 고기에 뿌리는 소금이다. 깨끗한 천일염을 구워 알칼리성 소금으로 만든 뒤 몰로키아라는 허브를 비롯한 30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약간 단맛이 느껴진다. 고기와 함께 먹는 콩나물재래기(겉절이)는 아삭함이 살아있고 잡내를 잡아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한우국밥(5000원)과 김치찌개도 전문점 이상이다. 특히 국밥은 뼈를 넣지 않고 소고기와 무, 대파로 끓여 국물이 맑고 담백하다.

축산물 전문가인 이씨는 고기에 대한 선별 안목이 뛰어난 것 같다. 육질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고 고기의 이력제도 실시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고기마다 작은 레벨을 붙여놓았는데, 여기에 원산지, 중량, 가공 연월일을 부위명칭과 함께 표기해 두었다. 다른 업소에서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 내내 맛있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을 부담 없는 가격에 제공하고 있는 이씨는 지금의 고깃집을 내기 전에 두 번 정도 큰 실패를 경험했다. 그때의 어려움을 잊지 못하는 이씨는 원할 경우, 힘들고 어려운 업소를 비용 없이 기꺼이 도와줄 수도 있다고 한다. 053-939-9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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