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먹거리(음식)/발로뛰어 찾은 숨은 맛집(전국)

대한민국 대표 불고기, 한양·광양·언양 세가지 불고기가 모였다!

대한민국 대표 불고기, 한양·광양·언양 세가지 불고기가 모였다!

입력 : 2013.03.22 09:00

[맛난 집, 맛난 얘기] 서래불고기

서울 <서래불고기>의 외관은 얼핏 새둥지를 닮았다. 양기 충만한 봄을 맞아 분주해진 새들이 나뭇가지 물어다가 지은 포근한 새집을 연상시킨다. 건축을 담당했던 (주)필디자인의 권영찬 대표는 ‘대자연 품에서 오붓하게 고기를 즐기는 느낌이 나도록 꾸몄다’고 한다. 삼나무 재질로 내 외장을 마감, 밖의 양기는 끌어 모으고 안의 양기는 너끈히 감싸줄 만하다.

상서로움 부르는 양기 가득한 불고기집

춘분을 지난 봄볕이 한결 따습다. 온갖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기세가 하루가 다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은 우주에 양기(陽氣)가 충만해져가는 시절. 바야흐로 음기가 물러가고 양기가 자리를 잡는 시간이다. 모든 만물은 우주에 가득 찬 양기를 받아 저마다 생명의 기운에 충만해진다. 동물의 암수는 서로 짝을 찾아 짝짓기를 한다. 사랑의 결실로 새끼들을 낳고 기른다. 앞으로 다가올 여름과 가을의 무성함과 풍요로움이 이들을 키워낼 것이다.

양(陽)의 기운은 밝음, 따뜻함이다

<서래불고기>에는 세 양(陽)이 있다.

 

한양(漢陽), 광양(光陽), 언양(彦陽)이 그것이다.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고기의 발상지이자 전승되는 지방이다. 세 지방 모두 지명에 양(陽)자가 들어가 있다. 이름대로 햇볕이 잘 드는 고장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인 만큼 기후 풍토나 사람의 성정도 밝고 활기찬 지방이다. 그런 곳에서 난 풀을 먹고 자란 소, 그 소고기로 양기가 넉넉한 사람이 만든 요리라면 당연히 그 음식도 양기가 우월할 것이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양이 셋, 즉 삼양(三陽)이 되었다. 셋이라는 숫자 또한 양(陽)의 수다. <서래불고기>의 기본 콘셉트는 양(陽)이 중첩된 모양새다. 예로부터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은 상서로운 날로 여겨 명절로 쳤다. 삼짇날(3월 3일), 단오(5월 5일), 칠석(7월 7일), 중양절(9월 9일)이 바로 그런 날이다. 몸이 허한 사람이나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필히 이집의 ‘삼양(三陽)불고기’로 양기를 보충할 일이다.

이 집의 상호인 ‘서래(瑞來)’는 ‘상서로움을 부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양의 기운을 확대하면 상서로움과도 통한다. 이래저래 <서래불고기>는 좋은 사람들과 밝고 경사스런 자리를 마련하기에 아주 적당한 음식점이라는 느낌이 든다.

삼양삼색(三陽三色) 한양, 광양, 언양, 세 고을 불고기

예전 동네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음식 냄새가 동구 밖까지 진동했다. 하굣길에 돌아오는 시골 아이들의 코를 제일 자극했던 것은 청포묵의 참기름 냄새와 불고기 익는 냄새였다. 나무 함지에서 모로 잘라낸 뒤 뚜걱뚜걱 썰어 간장과 참기름 뿌리고 김 가루를 얹은 청포묵. 임시로 만든 화덕 위 양푼에 국물을 질척하게 잡은 뒤 쇠고기를 넣고 왜간장과 설탕, 송송 썬 파를 술술 뿌려 지글지글 익힌 불고기.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당면이나 각종 버섯, 채소를 넣기도 했다.

중부지방에서 자란 중년들이라면 강렬했던 불고기 냄새와 맛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쩌다 서울 친척 집에 가서나 먹어보곤 했던 기가 막히게 맛있던 고기반찬. 이다음에 자라서 어른 되면 실컷 먹어보리라 다짐했던 그 음식이 바로 오늘날의 서울(한양)식 불고기다. 전골이나 일본의 스키야키처럼 국물이 자박해 밥과 함께 먹기 좋다. 달달한 맛이 외국인에게도 어필, 외국인이 익숙해 하는 대한민국 대표 불고기이기도 하다.

본래 서울식 불고기는 불과 직접 닿지 않는 용기에서 육수와 함께 익혀 ‘물고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서래불고기>의 서울식 불고기는 구멍 뚫린 불판으로 숯불이 올라오면서 직화구이의 맛도 낸다. 우리 전통 불고기는 맥적과 설야멱적, 너비아니로 이어졌다. 모두 직화구이다. 이 전통을 새롭게 서울식 불고기에 접목시킨 부분이 눈에 띈다. 이로써 일본식 스키야키 모방설에서도 일정부분 자유로울 수 있다. 하기야 모방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결점이나 잘못은 아니지만….

<서래불고기>의 서울식 불고기(300g 2만원)는 한우에 각종 채소와 당면을 넣는다. 그러나 화학조미료는 일체 배제하고 중량을 정해진 것 이상으로 제공, 푸짐함이 느껴진다. 이 집에서 외국인을 포함 고객의 주문율이 가장 높은 불고기다.

광양불고기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김씨 부잣집에 아들이 없었다. 고민 끝에 아내가 계집종을 남편 방에 넣었다. 그 후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노부부는 이런 아들 내외의 처사를 용납하지 못하고 이들을 쫓아냈다. 집에서 쫓겨난 부부는 살기 좋다는 광양으로 가서 양반행세를 하며 살게 되었다. 음식솜씨가 좋았던 부인이 고을 원님의 잔치에 음식을 해주다가 신분이 탄로 나 광양읍성 밖으로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읍성 밖은 무법천지였다. 그런데 당시 이곳에 광양으로 유배 온 선비들 가운데 뜻있는 이들이 김씨 부부의 아들을 교육시켜 반듯하게 키워주었다. 부부는 이 은공에 보답하고자 송아지나 암소를 잡아, 양념을 하고 참숯불에 구리 석쇠를 사용하여 고기를 구워 대접했다. 훗날 유배지에서 풀려나 서울로 올라간 선비들 가운데 이때의 광양 불고기 맛을 잊지 못하고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이라고 불렀다 한다. ‘마로’는 광양의 옛 지명이다.

광양불고기는 힘줄과 기름은 모두 떼어 내고 결 반대로 썰어 칼끝으로 자근자근 두드린 뒤 간장, 설탕, 참기름, 파, 마늘로 먹기 직전 무친다. 잘 무친 고기는 숯불 위에 구리로 만든 석쇠를 올려 굽는다. 팔순의 현역인 광양불고기 집 어느 주인 할머니는 팔꿈치 뼈가 튕겨 나왔다. 하도 칼끝으로 고기를 두드렸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두드린 광양불고기는 쫄깃쫄깃 씹는 재미에 고소한 불맛이 살아 있다. <서래불고기>의 광양불고기(200g 2만원)는 얇게 썬 한우 부채살을 간장 소스에 양념하여 불에 굽는다. 역시 직화의 불맛이 살아있어 대부분의 고객이 술과 함께 주문한다.

대부분의 유명 고깃집 밀집지역은 한우 산지와 인접했다. 언양불고기도 마찬가지

일제강점기 당시 언양 일대에 도축장과 푸줏간이 발달하고 넓은 목초지에서 소를 키우는 곳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저렴한 값에 좋은 품질의 소고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언양불고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0년대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이 경남 언양으로 모였다. 당시 언양 공사장 인근의 푸줏간에서 구입한 소고기를 간장 양념에 조물조물 버무려 드럼통을 편 철판에 대충 구워서 먹었다고 한다. 이때 고기 맛이 좋아 인부들의 입소문과 함께 전국 각지로 퍼져 언양 불고기 전문식당이 생겼다고 한다.

광양식 불고기가 즉석에서 양념을 해 구워내는 반면, 언양 불고기는 본래 2~3일 전에 미리 양념에 재두는 것이 달랐다. 최근 언양 불고기는 마블링의 상태가 제법 좋은 등심이나 살치살 등의 부위를 얇게 저민 후 간장 베이스 양념으로 즉석에서 버무려 숯불에 구워 먹는다. 또는 육질 맛을 살리기 위해 약간의 소금 간만 해 굽기도 한다.

<서래불고기>는 마늘과 각종 채소를 다져넣은 언양불고기(200g 2만원)를 경단 모양으로 내온다. 풍부한 한우 육즙이 잘 빠지지 않도록 가운데가 촘촘한 석쇠 위에 얹고 서서히 펴서 익힌다.

우리 맛과 정서 담긴 불고기, 사해동포 정답게 나눠먹었으면

한식세계화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첫 날, 국회에서 한식세계화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의결했다. 말에게 강제로 물을 먹일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생소한 음식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 그동안의 한식세계화 사업은 과정이나 시행상의 문제점과는 별개로 뭔가 중요한 게 빠진 듯하다. 음식은 문화다. 한식도 문화다. 그런데 한식세계화 사업은 비즈니스 측면만 너무 강조했다는 느낌이다.

가까운 사람끼리 정을 나누며 둘러앉아 함께 먹는 불고기. 경사스런 날 여럿이 나눠먹었던 이 땅의 불고기. 불고기는 외국인이 호감을 갖는 우리 음식이다. 외국인이 먹기에도 그 맛에 무리가 없다. 외국인도 사람이다. 맛과 분위기에 감동받은 경험이 쌓이다보면 자연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굳이 ‘한식세계화’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다시 찾게 된다.

불고기는 보편적인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세계인 누구나 공감하는 맛을 지닌 음식이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외국인들 상당수는 이미 가장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떠올리는 메뉴이기도 하다. 마침 <서래불고기>에서 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로, 오는 5월 이후 중국 상해에 출점할 예정이다.

이 집은 주인장이 고기 무게와 식재료 원산지를 속이지 않는 집으로 유명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믿을 만한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3대 불고기를 한 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 고객의 1/4이 외국인일 정도로 외국인 비중도 높다. 이쯤 되면 한식세계화는 몰라도 ‘불고기 세계화’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간 ‘한식세계화’라는 미명하에 허술한 바가지들이 밖에 나가 줄줄 샜던 모습을 보인 터여서 <서래불고기>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