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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음식)/발로뛰어 찾은 숨은 맛집(전국)

인간의 잠재된 생식 본능 일깨우는 '생고기 뭉티기'

인간의 잠재된 생식 본능 일깨우는 '생고기 뭉티기'

입력 : 2013.03.29 09:00

[맛난 집, 맛난 얘기] 자우가인

매년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꽃집과 문구점, 심지어는 편의점과 빵집에서 까지 카네이션을 판다. 어디서 나왔는지 상점과 거리는 온통 카네이션 천지다. 가격도 생각보다 무척 비싸다. 그러나 막상 당일이 지나면 하루 차이로 꽃 가격이 곤두박질친다. 카네이션의 경우와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생고기도 이와 비슷하다. 생고기는 시간과의 싸움에 직면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날것으로 먹는 생고기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따라서 도축하고 고기로 탄생하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급격히 경과시간에 반비례한다. 생고기가 생고기인 것은 불에 익히지 않은 신선육이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신선함 지키기 위한 시간과의 한판 승부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이 불에 익거나 타면서 생기는 풍미는 사람의 식욕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불에 굽거나 익히면 맛도 좋아지고 육질도 한결 부드러워져서 식감도 개선된다. 그러나 사람의 입맛은 천차만별. 누구나 다 이 맛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불을 발견하기 전, 상당기간 동안 인류는 생식(生食)을 했다. 불에 익혀 먹은 기간보다 훨씬 더 길지 모른다. 우리 몸 속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생식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 같다. 입에 피를 묻혀가며 뼈를 잡고 고기를 뜯어먹던 원시적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현대인의 야성본능을 충족시키는 음식이 바로 생고기다.

고기를 재료로 만든 음식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메뉴이자 조리 과정과 맛이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메뉴이기도 하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도 내면에 잠재한 꿈틀대는 생식(生食)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은 있다. 비록 소수지만 이들에게 생고기는 최고의 음식이다.

수원시 매탄동 <자우가인> 주인장 김기봉 씨는 생고기가 들어오는 날이면 긴장한다. 일단 청주의 분할 업소에서 생고기 보냈다는 연락을 받으면 재빨리 생고기 단골 고객들에게 문자로 알린다. 다른 고기와 달리 비정기적으로 공급받는데다 신선도가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평소 생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고객에겐 신속한 도착 정보가 아주 긴요하다.

생고기는 보통 저녁 5시경 들어오는데 당일 저녁과 다음날까지만 생고기로 존재한다. 하루가 더 지나면 생고기가 아닌 육회 감이 된다. 신선도 때문에 여름철에는 취급하기가 아주 곤란하다. 급히 가져오느라 배송비도 다른 일반 고기에 비해 훨씬 비싸게 먹힌다. 이래저래 업소 입장에서는 취급하기가 껄끄러운 메뉴다. 그래도 계속 찾는 단골 고객들이 있어 작파할 수도 없다.

차진 육질에 맛도 생김도 이름도 투박한 원시성 지녀

생고기는 한우 암소의 우둔살을 쓴다. 기름기가 없어 생고기로 먹기 알맞은 부위다. 도축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생고기가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로 릴레이 끝에 이 집에 도착한다. 발송한 문자를 보고 찾아올 고객을 위해 고기를 받자 마자 기본적인 손질을 한다. 소의 체온이 채 가시지 않아 내부 깊숙한 살은 여전히 온기가 남았다. 대부분의 구워먹는 고기와 달리 생고기는 색깔도 검붉다. 시간이 지나 공기와 접촉하면서 차츰 선홍색을 띄게 된다. 칼날이 예리한 데도 칼이 잘 나가지 않는다. 자꾸만 살이 칼날에 들러붙는다. 마치 총알이 솜을 뚫지 못하는 것처럼 차진 육질이 칼의 진행을 한사코 방해한다. 그러다 보니 자른 고기 단면이 깔끔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자우가인>의 생고기는 생고기뭉티기(150g 2만원)라는 메뉴 이름으로 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북지방의 ‘뭉티기’와 유사하다. 뭉티기 모양은 업소에 따라 다르다. 말 그대로 뭉텅뭉텅 덩어리 형태로 내는 집이 있고, 포를 뜨듯이 넓고 평평하게 잘라내는 집이 있다. 넓게 잘라내는 집도 두께를 두툼하게 뜨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얇게 뜨는 집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름처럼 모양이 투박하고 못 생겼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뭉티기의 태생적 한계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덩어리 형태나 두툼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생선회처럼 얇게 뜬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 집은 중간 두께쯤으로 평평하게 잘라낸다. 단골 고객이나 미리 부탁해두는 손님에게는 원하는 두께로 썰어준다.

생고기뭉티기는 고기 육질이 워낙 차져 접시를 세워도 고기가 그대로 그릇에 들러붙어있다. 마치 싱싱한 생선회와 비슷한 식감을 낸다. 그래서 생고기로 초밥을 만드는 업소도 있다. 바로 잡은 고기여서 숙성이 안 된 터라 깊은 감칠맛은 오히려 숙성육에 비해 덜 하다. 그러나 생고기뭉티기 마니아들은 갓 잡은 고기의 싱싱함과 차진 육질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또한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고기뭉티기만의 시간 한계성과 희소성도 이 음식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취향 따라 양념장이나 기름장에 찍어먹어

대구 등 경북지방에서는 뭉티기를 주로 마늘 넣은 양념장에 찍어먹는다. 이 집에서도 마늘과 고춧가루를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기호가 다른 고객을 위해 소금 기름장도 함께 내놓고 있다. 순수하게 고기 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오히려 양념장보다 기름장이나 맨 소금에 찍어먹는 편이 낫다.

대개는 생고기뭉티기를 청주 등 술과 함께 먹는다. 그러나 고기를 먹고도 속이 허전하면 공기 밥에 기본 찬으로 제공하는 콩나물무침, 묵사발, 꽃게된장찌개와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도 문제없다.

처음부터 생고기가 버거운 사람에겐 살짝 양념을 한 양념육회(150g 2만원)를 권하고 싶다. 고기 육질은 생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양념 맛이 나,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계란 노른자를 풀어서 고기 본연의 맛을 가리는 육회들보다 맛과 신선도가 훨씬 뛰어나다.

처음 생고기뭉티기를 먹는 손님은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면 오히려 구운 고기를 외면하게 된다고. 마치 참치회나 고급 생선회에서 느낄 수 있는 맛과 식감을 즐긴다. 어쩌면 이들은 인간 내면 깊숙이 잠재한 날고기에 대한 향수를 만끽하는 지도 모르겠다.

기고= 글, 사진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