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은 지켜져야( 이것은 법 고처서)/법은 지키라고 있다

[특파원 칼럼] "그게 법이다(That’s the law)"

[특파원 칼럼] "그게 법이다(That’s the law)"

  • 장상진 뉴욕특파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 2013.05.05 23:07

    
	장상진 뉴욕특파원 사진
    장상진 뉴욕특파원

    #1. 보스턴 마라톤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가 붙잡힌 지난달 19일 밤, 일주일을 분노와 불안에 떨던 보스턴 시민들이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USA, USA'라는 연호가 들려왔다. 월드컵 4강 진출 당시의 서울 같았다. 심야까지 현장을 지키다가 이러한 분위기도 느껴보고 목도 축일 겸 해서 시내 술집 거리로 향했다. 이때가 오전 1시 30분. 그러나 어떤 술집도 들어갈 수 없었다. 새벽 2시 이후 술을 팔지 못한다는 매사추세츠주 법규 때문이었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오늘처럼 좋은 날, 딱 한 잔만"이라며 읍소해봤다. 2시까지는 수십여분이 남았거니와, 어차피 2시라고 술 마시던 손님을 칼같이 내쫓는 건 아니기에 웬만하면 슬쩍 넣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9개월 미국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진 한마디, "미안하다. 그게 법이다(That's the law)"였다.

    #2. 하루 뒤, 조하르를 검거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이없는' 논란이 이어졌다. 체포하는 순간에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규정한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아빠를 기다리던 8세 꼬마, 꽃다운 20대 여성 등 4명을 살해하고 14명의 팔·다리를 앗아가는 등 264명을 다치게 해 국민적 분노를 산 흉악범에게 미란다 원칙 논란이라니. 게다가 물어볼 게 태산 아닌가.

    그러나 이들은 진지했다. 조하르가 눈을 뜬 바로 다음 날, 한 연방 판사가 "수사 효율성"을 내세운 연방수사국(FBI)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의 병실을 방문, 기어이 미란다 원칙을 알려줬다. 이때까지 "뉴욕에서 추가 테러를 하려 했다"며 순순히 조사에 응하던 조하르는 그 직후 말문을 닫았다. 그 판사에게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대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법이다."

    #3. 테러 사건 취재를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역사(驛舍)를 나서는 순간, 주차된 경찰차 뒤 범퍼에 인쇄된 '캅샷(Cop Shot·경찰관 저격), 현상금 1만달러'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뉴욕에서는 경찰관을 향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그 순간, 별도 절차 없이 자동으로 총격범에게 현상금이 걸린다. 총탄 적중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 발생 수분 만에 '$10,000'라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건 트럭이 현장에 도착, 주변을 돌며 범인을 압박하고 시민들의 제보를 독려한다.

    이른바 '캅샷 프로그램'이다.

    제보자에게는 사건 관련 정보 외에 개인 정보를 일절 묻지 않는다. 제보를 바탕으로 범인이 잡히면 즉시 현금으로 1만달러를 건넨다. 1984년 이후 이 프로그램에 따라 상금을 받아간 사람은 20명이 넘는다. 이 프로그램의 운영위원인 존 프로베토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곧 시민에 대한 도전이다. 1만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법에 대한 시민의 존중, 그러한 인식의 밑거름이 되는 공정한 법 집행과 법 집행자에 대한 확고한 권위 부여. 이것이 기자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목격한 법치주의의 선순환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