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03 03:06
[우리 주변의 범죄 사각지대] [2] 아파트 안전공간 아니다
현관입구 'CCTV 작동중' 팻말 가짜 경고문인 아파트
많아
놀이터·옥상·지하주차장서도 인적 드물어 납치·추행 빈발
"자체 방범 허술한 아파트는 바깥보다 더 위험지역 될수도"
지난 26일 오전
2시 30분쯤 강원 속초시 교동 한 아파트에서 귀가하던 주민 A(여·44)씨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김씨는 아파트 입구에서 전모(32)씨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아파트 지하실까지 끌려갔다. 위기에 처한 A씨가 계단 난간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자 당황한 전씨는 멈칫거리다 도주했다. 이
아파트는 8개 동으로 인근 지역에선 규모가 제법 큰 단지였다. 그러나 A씨가 전씨에게 끌려가는 동안 이를 목격한 경비원이나 주민은 없었다.
전씨가 도주하지 않고 A씨를 폭력으로 제압했다면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이 아파트에는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는 시설이 없었고, 범행 장소에는
CC(폐쇄회로)TV도 없었다.
1일 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내부에서 한 남성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계단과 복도는 외부와 차단된 채 어둡고, CCTV와 같은 보안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김지호 객원기자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옆에는 'CCTV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CCTV는 없었다. 이 아파트에 설치된 CCTV는 지하주차장 2대, 아파트 입구 1대, 놀이터 2대 등 모두 5대뿐이고 CCTV가 없는 곳에 '가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아파트 관리소장 박모(55)씨는 "구청에서 '담장 없는 아파트'를 권장해 인근 아파트 모두 담장을 없앤 상태"라며 "특별히 출입과 관련한 보안 시스템을 마련하지도 않아 범죄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CCTV에 잡히지 않으면 범인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파트 계단·복도·지하주차장·놀이터 등에서 발생하는 범죄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안에 있는 아이들도 쉽게 범죄 피해자가 돼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서울 중림동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던 여자 아이(8)를 공중화장실로 끌고 가 바지를 벗기고 사진을 찍으려 한 혐의로 대학생 권모(23)씨를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침 공중화장실 옆 칸에 있던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기에 아이가 무사했다"며 "초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아이가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내 여러 공간이 강력범죄, 특히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한다. 손원진 경찰교육원 교수는 "최근 5년간 전체 성폭력 범죄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며 "특히 엘리베이터 주변(39.8%)과 계단 인근(27.7%)이 성범죄에 취약하다"고 밝혔다.
범죄가 발생해도 범인을 잡기가 어렵다는 게 아파트의 또 다른 '빈틈'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출근 중이던 김모(53)씨가 둔기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9개월이 다 됐지만, 범인을 찾을 만한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절도범들은 보안에 취약한 아파트 1층만을 노리기도 한다.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1층을 돌아다니며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용의자는 사건 발생 4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박경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파트 내에는 CCTV가 촬영할 수 없는 공간이 많기 때문에 첨단 CCTV를 달아도 범죄가 발생한다"며 "아파트 범죄는 경비 인력이 충분히 있어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대다수 아파트는 사람·차량 출입 통제시설을 만들어놓고도 사용하지 않으며, 조도(照度)가 균일하지 않아 밝은 곳은 아주 밝고 어두운 곳은 아주 어둡다"며 "기존 보안 시설을 적극 활용하고, 조도를 균일하게 맞춰 사각지대를 없애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늦은 밤, 대형마트 실외 주차장선 금품털이 기승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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