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28 03:14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로 처음 두자릿수 공격포인트…
고교도 포기한 프로行은 본인·부친·지도자 성공작
-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이청용이 시즌 5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AP뉴시스
이청용(22·잉글랜드 볼턴)이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8월 잉글랜드 진출 이후 무서운 속도의 성장세다. 골
결정력은 물론 어시스트·돌파·패스가 모두 좋아졌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청용에겐 대학이나 고교 간판이 없다. 이력서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진학을 포기한 탓이다. 어찌 보면 도박 같은 선택을 한 이청용의 성장은 '축구 올인 세대'의 성공 케이스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고교 대신 프로로
창동초등학교를 거쳐 도봉중에 진학한 이청용은 처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이찬행 당시 도봉중 감독(현 재현고 감독)은 이청용에 대해 "상대가 오는 방향을 읽고 역동작에 걸리도록 볼을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첫 볼 터치부터 남다른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이청용은 도봉중 3학년 때 큰 결심을 했다. 고교 진학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프로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찬행 감독은 고심했다.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능력 있는 선수였기에 큰 무대로 보내는 것이 옳았어요. 일반 고교로 갔다면 지금 같은 선수는 못됐을 겁니다." 아버지 이장근(50)씨는
어린 아들이 학창시절도 없이 프로에 뛰어드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청용의 뜻이 확고했다. 이청용은 아버지에게 "어차피 축구를 시작한
만큼, 이걸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고 아버지도 마음을 굳혔다. 이씨는 "아들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축구계도 출신 학교에 의해 좌우되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해서 이런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었다. 간판이 아니라 실력만으로 축구에 올인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이청용의 FC서울 동료였고 대표팀의 '쌍용'인
기성용(21·현재 스코틀랜드 셀틱)이 중학교 시절 호주에서 축구 유학을 하고 한국 고교로 유턴한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축구만 아는 '축돌이'
이청용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하다.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축구공을 몸에서 떼지 않는 '축돌이'였다. FC서울 2군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청용은 입단 2년 만인 2006년
처음 1군에서 뛰었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7년부터 붙박이 공격수로 활약하다 잉글랜드에 진출했다. FC서울 관계자는
"이청용은 입단 때부터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옆길로 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 ▲ 이청용의 한 살 때 모습(왼쪽)과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 이청용은 초등학교 때부터 몸이 빨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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