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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 뗀 순간 '기막힌 예감'… 올시즌 부진 한 번에 날렸죠"

"첫발 뗀 순간 '기막힌 예감'… 올시즌 부진 한 번에 날렸죠"

  •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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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3.30 03:03

    빙속 세계선수권 500m 2연패 모태범 "소치선 1000m도 金 딸 것"
    "이상화 승승장구에 큰 자극… 덕분에 마지막에 좋은 결과 내"

    "어휴, 이번만큼 한 시즌이 길게 느껴졌던 적이 없어요. 지난 시즌만 해도 '오, 벌써 3월이네' 했는데 이번엔 '아, 아직 1월이야?' 이랬다니까요."

    29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모태범(24·대한항공)은 감기에 걸려 연방 기침을 해댔다. "휴가를 맞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어요. 어디가 됐든 푹 쉬고 오려고요. 올 시즌은 정말 힘들었거든요."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슬럼프 탈출

    모태범은 24일 끝난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500m 2연패(連覇)를 달성했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동메달이 목표였다. 이번 시즌 월드컵 시리즈 500m에서 레이스에 열 번 나서고도 딱 한 번 시상대(1차 대회 2차 레이스 3위)에 올랐을 정도로 부진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시즌 전 스케이트날을 교체한 것이 악재였다.

    ‘승부사’모태범은 지난주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 500m에 출전해 역전극을 연출하며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9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그는“많은 연습이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완벽한 스케이팅을 위해선 코너링 때 파워를 더 실어야 했어요. 그런 점에서 캐나다산(産) 스케이트를 선택했습니다."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그의 과감한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캐나다산 스케이트는 내구성이 강해 파워 스케이팅에 좋은 장점이 있는 대신 컨트롤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외국 선수들도 캐나다산 제품을 길들이는 데는 2년이 걸린다고 한다. 성급하게 스케이트를 바꿨던 모태범은 월드컵 3차 대회부터 다시 예전에 사용했던 네덜란드 제품을 신었다.

    하지만 한 번 흐트러진 감각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1월 캘거리 월드컵 500m 1차 레이스에선 16위까지 처졌다. 내리막길을 걷던 모태범은 세계선수권에서 살아났다. 세계선수권이 열린 아들레르 아레나의 빙질이 3년 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밴쿠버의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과 흡사했다. '감'을 잡은 모태범은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500m에선 멋진 역전극을 펼쳤다. 1차 레이스를 3위(34초94)로 마치더니, 2차 레이스에선 가장 빠른 기록(34초82)으로 역전 우승을 일궜다. "500m는 스타트 때 첫 세 발에서 결정이 나는데 2차 레이스에선 그 세 발이 기가 막혔어요. 결승선을 통과하고 전광판에 숫자 '1(순위)'이 뜨는데 밴쿠버 올림픽 때 이상으로 기쁘더라고요. 마음을 비워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소치 2관왕 후 평창까지

    우승의 감격을 안고 라커룸으로 들어갈 때 친구 이승훈(25·대한항공)이 팀 추월 경기를 하기 위해 나오고 있었다. "(이)승훈이가 '수고했다'면서 안아줬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승훈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팀 추월 경기에서 아시아 최초로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랑 승훈이 저, 이렇게 밴쿠버 빙속 3총사였잖아요. 올 시즌 승승장구하는 상화를 보면서 승훈이랑 저랑 '야, 우리는 뭐하고 있는 거냐'라며 반성도 하고 자극도 받고 그랬어요. 근데 마지막에 셋 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죠."

    올림픽 금메달에 세계선수권 2연패(連覇)까지 달성했지만 모태범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1000m에서도 세계 정상에 서야죠. 500m와 1000m를 동시에 해내야 진정한 스프린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치올림픽에서 국내 선수론 최초로 500m와 1000m 두 종목 석권을 노린다. 그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는 것은 즐겁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렀지만, 아직도 그는 출발선에 서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번 세계선수권 때가 가장 떨렸다고 했다. "출발선에 섰을 때보다 격렬한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어요. 늘 너무 떨려요. 그럴 땐 '열심히 준비했잖아' 하며 자신을 다독입니다. 많은 훈련량이 자신감의 원천이 되는 거죠."

    그는 자신의 선수 인생을 500m 경기에 비유하면 첫 번째 코너를 벗어나 직선주로로 빠져 들어가는 단계라고 했다. "좋은 스타트를 했고, 이제 절반 조금 못 미친 지점까지 잘 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 레이스에서 마지막으로 힘을 내는 구간이 평창올림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