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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 세계정세

"조개가 이럴수가" 남해는 지금 전쟁중

"조개가 이럴수가" 남해는 지금 전쟁중

  • 여수=정성진 기자

    입력 : 2013.03.25 03:07

    [현장르포] 엔저 직격탄 맞은 남쪽 바다를 가다
    70% 日에 수출하는 여수 조개, 작년보다 수출가 23% 떨어져
    창고에 쌓인 조개 3배로 늘어… 엔화 가치 10% 떨어질 때마다
    국내 수산업계 780억씩 손해, 광어·전복 등 수산업 전체 비상

    지난 21일 오후 4시 전라남도 여수시 국동 잠수기(潛水器)수협. 방금 잡아온 키조개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잠수사 도연태(50)씨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수심 30~40m 바다 밑에서 조개를 잡는 것은 도씨 같은 잠수사들이다. 보험도 못 드는 위험한 직업이다.

    "수압 때문에 오른쪽 고막이 터져서 일을 못하다가 2주 만에 바다에 나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고생한 만큼 보람이 없어 속상하네요."

    경락가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키조개 상품(上品) 경락 가격은 1년 전 마리당 900~1000원이었지만 지금은 700~800원이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일본 수출 단가(원화 환산)가 떨어지면서 수출 가공 업체들이 경매에서 사가는 양이 줄어든 탓이다.

    세계 환율 전쟁이 수산업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최전선의 잠수부와 선원부터 수산물 수출 가공 업체까지 수입이 줄고 있는 것이다. 작년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00엔당 1518원까지 올랐으나, 아베 총리가 작년 12월 "엔저 정책으로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면서 지금은 1180원으로 내려왔다.

    조개 가공 업체가 몰려 있는 여수(麗水) 일대는 특히 피해가 크다. 여수에서 가공되는 조개의 70%가 일본으로 수출된다. 키조개 관자의 일본 수출가는 작년이나 지금이나 kg당 1400엔으로 같다. 그러나 원화로 환산하면 작년 최고 2만1300원이었던 것이 지금은 23% 떨어진 1만6500원에 불과하다.

    조개 수출 가공 업체 해조영어조합법인의 조용관 사장은 "인건비나 임대료, 물류비는 내가 낮출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가격에서는 수출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

    여수시 남산동 남양냉동의 영하 20도 창고 안에는 조 사장의 키조개 관자 30t이 쌓여 있다. 그는 "일본 측과 가격 협상이 안 되고 다른 판로도 없어서 1년 만에 보관량이 세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수출 감소는 조업량 감소를 가져오고, 조업량 감소는 각 분야 종사자의 소득 감소를 불러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키조개 껍질을 까는 조금자(50)씨는 "일이 30% 정도는 줄었고 월급도 그만큼 줄었다"고 말했고, 조개잡이 배 선원 서신남(55)씨는 "일을 못 나가는 날이 많다"고 했다.

    광어·삼치·전복·김 등 비상

    제주도는 광어 탓에 비상이다. 제주도 350개의 광어 양식장들은 지하수와 바닷물을 섞어 광어를 키우고 있다. 특히 섭씨 17~18도인 지하수의 양을 조절해 수온을 조절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본에서 소비되는 광어가 연간 8000~1만t인데, 이 중 절반이 제주도산이다. 제주도의 광어 양식은 관광·감귤에 이어 셋째로 큰 산업이다. 광어 수출 업체만 25개다.

    작년 일본에 7억400만달러를 수출했던 국내 수산업계는 올해 엔화 가치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사진은 국내 최대 어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의 모습. /남강호 기자
    이들은 대일 수출에서 손해를 보기 시작하자, 일본 거래업체에 "단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제주어류양식수협 양귀웅 무역팀장은 "kg당 1100엔인 가격을 1350엔으로 높여보려고 했지만 일본 유통업체들이 우리 요청을 잘 안 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삼치도 마찬가지다. 횟감으로 먹는 2.5kg 이상의 삼치는 주로 일본으로 수출해왔다. 그러나 kg당 수출 단가가 8000~9000원에서 7000~8000원 수준으로 내렸다. 부산공동어시장의 한 생물 삼치 수출업자는 "일본 내 시세도 떨어질 조짐이 있어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김 업계는 한·미 FTA를 이용해 미국 시장 확대에는 성공했지만 일본 수출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월 대미(對美) 김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8% 늘어난 650만달러를 기록했지만 대일(對日) 수출은 25% 줄어든 300만달러에 그쳤다. 단가가 떨어지자 국내 업체들이 수출 물량을 줄인 것이다. 이 밖에 전복·참치 업계도 일본 수출에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작년 대일 수출 수산물은 7억400만달러. 올해도 같은 금액을 수출한다면, 엔화 가치가 10% 떨어질 때마다 국내 수산업계는 7040만달러(780억원)씩 손해를 본다.

    울며 겨자 먹기 수출도 많아

    문제는 손해를 보더라도 수출을 당장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조개 가공 업체 대표는 "우리 은행들은 현금거래보다 수출 신용장을 더 신뢰한다"며 "경험상 어느 날 갑자기 수출을 멈추면 운영자금을 안 빌려줄 가능성이 크고, 안 빌려주면 부도가 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수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어 수출업체 관계자는 "20억원을 빌려 양식장도 만들었는데 일본 수출에서 이익을 못 내고,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조건이 일본 수출이었기 때문에 수출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