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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通貨정책 때 놓치면 유럽위기 꼴 난다

[시론] 通貨정책 때 놓치면 유럽위기 꼴 난다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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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3.06 23:01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 결과 일부 경기 상승세 보이는 미국
    국가별 대응이 어려운 유럽은 지표가 계속 악화되고 있어…
    지금 통화정책이 필요한 한국 보완적으로 재정 지출을 해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미국과 유럽의 경기 모습은 대조적이다. 미국은 '시퀘스터(연방 예산 자동 삭감)' 발효로 예산이 삭감되는 등 재정 적자에 따른 문제는 여전하지만 신규 주택 판매나 주택 매매 지표는 개선되는 등 부동산 시장 회복에 힘입어 경기 상승세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유럽은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재정 위기 국가를 중심으로 경기 지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이렇게 대조적인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경기 대응 정책 수단의 선택 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퀘스터에서 나타나듯 미국 정부도 유럽 재정 위기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리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화폐를 찍어내는 확장적인 통화 책을 구사하고 있는 반면, 유로 체제로 묶인 유럽중앙은행은 유로 권역(圈域) 공통의 통화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 상황에 맞는 적극적 대응이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국 여건에 맞는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이탈리아가 선택한 것이 긴축을 통한 재정 건전화였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선 경제성장을 통해 재정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렇다고 유로화 체제를 바꿀 수도 없기에 몬티 정권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국민의 외면과 정치적 패배였다. 긴축이나 증세를 통해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정권이 살아남으려면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재정 여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지속적인 침체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늘려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기화한 경기 침체의 대표적인 사례인 대공황 때도 테네시강 개발 등 재정 지출 사업의 직접 효과보다는 통화 발행 증가로 디플레이션을 막은 것이 경기 회복에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대규모 통화 발행 과정에서 달러화 가치가 절하되며 수출이 회복된 것이 경기 개선에 효과적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전비(戰費) 조달을 위한 대규모 통화 증발이 이루어진 결과로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현 상황을 가르는 핵심은 정책 수단, 그중에서도 자국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고 이는 우리나라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경제 전체로는 확장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더라도 한 국가 내에선 구성원별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확장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이자율 하락은 채무자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채권자에게는 손해이다. 또 통화 공급 증가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 기업에는 유리하지만 수입 기업에는 불리할 수 있다. 같은 금융권도 장기 고정 이자율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지급하되 수익은 시장 이자율에 의존하는 보험회사에는 이자율 하락이 부담인 반면 채권을 보유한 증권회사에는 이자율 하락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이 유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책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국민경제 관점에서 그 정책이 현재 필요한지 냉정한 판단이 중요하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을 비롯해 실물 자산 가격 하락에 직면해 있으며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급속한 원화 가치 상승 위험에 노출된 우리 입장에선 디플레이션과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확장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이자 부담 감소가 추가적인 부채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DTI 같은 대출 규제 형태의 금융 감독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정 정책의 역할은 없는가? 전반적인 경기 회복 효과를 얻을 만큼 재정 정책을 활용하려면 재정 적자 규모가 너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경기 회복을 위한 전반적인 대응은 통화정책이 수행하도록 하되 충분한 혜택을 보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대한 지원은 재정이 직접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공황 때도 대규모 토목 사업용 재정 지출에 대한 평가는 낮지만 저소득층 지원과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정부 지출은 소비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안정적 내수를 확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이 오랜 기간 적극적으로 구사되지 못한 채 경기 부양 부담이 주로 재정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 지출 증가로 재정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늘고 있다. 통화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시의적절한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재정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은 유럽이 겪고 있는 재정 위기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되 재정 지출은 이러한 통화정책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이 안정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완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