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27 03:03
정부 주도 정보화 앞장서 달린 우리, 웹 2.0 시대에도 법체계는 제자리…
규제 방식 벗어나 정부·민간 동등한 IT 협력 체계가
제대로 세워지길
방석호 홍익대 법대 학장·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IT 역사는 30여년 전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구호와 함께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민간의 전산화
투자는 빈약했기 때문에 전산망법을 만들어 국가 정보화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게 됐다. 행정 전산망과 의료 전산망 등 5개 핵심 분야를 골라서 집중
투자함으로써 관련 시장과 인력·기술을 빨리 만들어내겠다는 핵심 국정 과제였다. 하지만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법을 만들어서 업무 추진에 혼란을
일으켰다. 결국 1991년부터 체신부를 주무 부처로 하는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이 법안 초안을 만든 필자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정보화의 큰 우산 속에서 어떻게 각 영역의 분담과 조정을 할 것인지였다.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화의 특성상 효율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추진위원회와 각 부처 차관을 위원으로 하는 실무추진위원회 등 정부 주도 모델은 불가피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이 정보화를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로 인식하면서 1992년 우리의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에도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 1년 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를 통해 통신과
방송까지 포괄하는 융합 전략을 발표했다. 그 뒤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벤처 창업 열풍이 불자 정부의 역할을 융자·지원에서 투자로 바꾸는 것을
제안, 1997년에 벤처육성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정보화 추진 모델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세계시장에서 일어났던
웹 1.0의 흐름이었다. 우리는 그런 시대정신에 충실했고, 정부 주도하의 정보화 사업은 전자 정부 시스템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 정도로 앞장서
달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개방·참여·공유'를 표방한 웹 2.0이 등장했고, 디지털·모바일 파도가 계속 몰아쳤지만
우리의 법체계는 정보화와 융합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찍부터 투자한 네트워크 덕분에 인터넷TV의 앱이 어느 나라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인터넷TV를 통신·방송 융합의 상징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뒤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뛰어넘는 창조 경제
세상을 맛보게 해줬지만 2008년 만들어진 관련 법은 인터넷TV를 가둬버렸다.
이제 융합을 넘어 창조 경제를 꽃피우고 국민 맞춤형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IT가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하는 웹 3.0까지 포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현재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화라는 우산 밑에 들어가 있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네트워크·벤처 육성 등 우산살에 어떻게 인터넷 기반의 창조 경제를 덧붙일
것인가?
개인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창조 경제는 없으며, 그래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정부
주도하의 정보화 우산을 버리고 창조 경제라는 새로운 우산을 쓴다는 것은 민간 기업과 정부가 동등한 파트너가 되는 IT 협력 체제가 법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공 정보를 정부가 독점할 수는 없고 정부도 한 플랫폼으로 민간과 경쟁할 때 더 많은
유익한 정보가 재생산·가공되어 상품화된다. 또 창조 경제 시대의 법질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단기간에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일방향적 추진
방식이나, 사업자로 하여금 정해진 것만 하게 한다는 관리자적 규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와 시장이 직접 판단하고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창조 경제 시대에 맞춰 대한민국 IT 법질서를 다시 짜는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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