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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창조 경제'의 터전, 협동조합

[시론] '창조 경제'의 터전, 협동조합

  • 이철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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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3.04 22:28

    일자리 창출하고 고용 안정성 높아… 계층과 세대 갈등 완화 수단도 돼…
    전문가와 자금력 우선 해결하고 정부는 효율적인 관리 체계 구축을

    이철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1956년, 내전(內戰)으로 황폐해진 스페인의 한 산골 마을에서 신부 한 명과 직업학교 졸업생 5명이 '울고르(Ulgor)'라는 조그만 석유난로 공장을 차렸다.

     

    그리고 주민들이 그 제품을 사주기 시작한 지 55년 뒤, 울고르는 매출 24조원의 스페인 3대 기업 '몬드라곤'으로 발전했다.

     

    인도 최대의 비료 기업 IFFCO,

     

    스위스의 소비자 유통업체 1위 미그로,

     

    세계 최대 키위 생산업체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프랑스 제1 은행 크레디아그리콜 등도 이런 성장 과정을 거쳤다.

     

    소외된 사람들이 시작하고 지역 주민들이 협력하여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런 기업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인 것이다.


    협동조합은 공동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만드는 공동 소유와 민주적 운영 기반의 기업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작년 12월부터 시행되면서 협동조합 붐이 일고 있다. 금융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할 정도로 제도적 제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법 시행 2개월 만인 올 1월까지 협동조합이 350여개 만들어졌고, 서울시는 10년 안에 협동조합 8000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협동조합은 새 정부의 비전과도 잘 맞는 기업 모델이다. 협동조합은 우선 창조 경제와 경제 민주화 원칙에 부합한다.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도 경영에 필요한 일자리를 창출한다. 게다가 조합원이 기업의 주인이면서 근로자이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도 높아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협동조합은 소수 자본가가 설립하는 1주 1표의 주식회사와 다르다. 투자 규모에 관계없는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 때문에 여성이나 소상공인같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풀뿌리 계층이 참여할 수 있고, 자본이 아닌 조합원의 사용 실적에 따라 이윤을 배당하기 때문에 사람 중심의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지역 기반의 맞춤형 복지·교육·안전을 책임지는 사회 서비스 제공 기관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노인·아동·노숙인 같은 취약 계층에 돌봄·교육·여가·주택 등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은 지역 기반의 공동체 문화를 만든다. 유럽에서도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도시의 시민들이 지역 내의 상호 연대를 통해 성장시켰다. 협동조합은 이처럼 사회의 계층 및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첫째, 협동조합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운영 정신인 '연대와 협력'에 맞는 영업·재무 등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가를 대학에서 양성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위한 자금 인프라가 필요하다. 현재 많은 단체가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지만 자금력이 취약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면 협동조합의 자립 정신을 훼손할 수 있어 곤란하다. 따라서 시민 기금 조성 등을 통한 자금 지원 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관리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협동조합은 복지를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에 정부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한해 공정거래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의도로 설립된 사회적 협동조합이지만 조합원들의 출자 자금을 노린 사기 등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건전한 협동조합이 양성되도록 정부의 엄격한 심사와 실사(實査)가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