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17 23:03
증세 없는 복지 확대, 재정 건전성 유지… 고차방정식 직면한 박근혜 정부 1년차
'복지 암초' 뚫으려면 死則生 각오 필요, 솔직한
增稅 논의가 현명한 방법일 수도
이지훈 경제부장

이번 봄은 시끄러울 것이다. 혹독한 추위가 지나고 나면 광장은 다시 온갖 깃발로 뒤덮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첫해 봄의 광우병 사태에 날개가 꺾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1년차 봄부터 복지의 '트릴레마(trilemma·동시에 세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복지를 확대하되, 증세(增稅)는 없고, 재정 건전성은 유지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지를 조금이라도 가지치기하려 들면 좌파 진영에서 치고 나올 것이다. 과거 좌파의 핵심 메뉴였던 복지를 우파가 선제공격한
것이 이번 선거의 승부를 갈랐다는 트라우마가 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미 기초연금과 4대 중증 질환의 범위를 놓고 그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려 들면 온갖 이해집단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지하
세원(稅源)을 양성화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의 조세 저항도 클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박근혜 정부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이다.
물론 정부 지출을 구조조정해 세금 씀씀이를 줄이자는 것이나,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불요불급한 비과세·감면을 축소해 세금
수입을 늘리자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누구도 토를 달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가 이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과연 의도한 만큼 제대로 될까이다. 역대 정부치고 정부 지출을 알뜰하게 하고, 지하경제에서 세원을
발굴하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정부가 있었을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왜 지금껏 아무도 제대로 못했을까.
작년에 정부가 농협과
신협, 새마을금고의 예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없애려고 했다. 2000억원 정도의 세수 증대 효과밖엔 없는데도 결국 못했다. 예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업계의 로비에 지역구 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이구동성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2000억원 없애기가 이렇게 힘든데, 한 해 어떻게
10조원 이상을 줄일 것인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전 국세청 고위 관료는 "난다 긴다 하는
국세청 조사국 직원 수천명이 1년에 세무조사해서 거둬들이는 노력세수가 4조~5조원인데, 여기에 지하경제 양성화로 한 해 6조원을 더 거두려면
조사요원을 2배 이상 늘려야 하고 민란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에서 그런 게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쁘다"고도
했다.
새 정부는 복지 문제로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힐 것이다. 이런 난관을 뚫기 위해서는 12척의 배로 왜선(倭船) 133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처럼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원들에게 어떻게 의무에 대해 설득하고,
미적지근한 공무원들을 몸 바치게 할 것인가.
현실론을 이야기하면, 결국 새 정부의 시도가 광장만 시끄럽게 할 뿐 공약 재원 마련에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결국 당선인이 복지 공약 일부를 포기하거나 복지의 선택 기준을 강화하지 않는 이상 증세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증세도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조금씩 짐을 분담시키는 것이어서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이면 새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기 시작하는데, 이르면 그때 증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일이 그렇게 풀릴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진작부터 솔직해지는 게 옳다. 그래야 국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새 정부도, 국민도 피하고 싶은 게 증세 문제이지만 싫어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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