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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인체에 해되는 물건

극단적 채식주의자의 극단적 채식비판론

극단적 채식주의자의 극단적 채식비판론

입력 : 2013.02.23 03:04

"내 몸이 망가졌다"
정의감과 연민으로 16세에 채식 택한 저자, 6주 후 저혈당증 오고퇴행성 관절질환까지
"채식은 무지의 산물"
곡물 위주 식단은 포도당 공급 주기 교란… 농업은 땅을 파괴하고 동식물 사라지게 해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
부키|440쪽|1만5000원

"참치를 먹었다. 온몸의 세포, 글자 그대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오, 주여! 이게 바로 살아있는 느낌이구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고작 참치 캔 하나 가지고 과장이 심하다 싶다. 하지만 20년 만에 처음 입에 댄 참치라면? 저자는 16세 때부터 20년간 급진적 채식주의자 '비건(vegan)'으로 살았던 인물. "엄마가 있거나 얼굴이 있는 건 먹지 않는다"며 우유, 달걀조차 먹지 않았던 그는 이 책을 통해 "속았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마치 사교(邪敎) 집단에 빠졌다가 탈출한 사람의 고발장처럼 '채식주의의 신화'를 고발한다. 때론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싶을 정도다.

◇"채식, 몸만 망가뜨렸다"

저자가 소녀 시절 채식주의를 택한 것은 정의감, 연민 그리고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절박한 갈망에서였다. 한마디로 '지구를 구하겠다'는 정치적 채식주의였다. 하지만 몸엔 변화가 왔다. 채식주의를 시작한 지 6주쯤 되자 저혈당증이 왔다. 3개월 후엔 생리가 멈췄고 20년간 50번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 이번엔 퇴행성 관절 질환이 찾아왔다. 우울증, 초조감도 밀려들었다. 항상 배가 고팠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과 발이 1년에 아홉 달은 아렸다. 의사를 찾아봤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의사들은 아무리 증상을 설명해도 10대 소녀의 척추가 내려앉았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의사들은 "무엇을 먹느냐?"고 묻질 않았다. 원인은 거기에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의로움과 정의가 자신을 지탱하는 영양분이라고 믿고 버텼다.

/신지호 기자
저자가 채식주의를 탈출하게 된 건 한 기공(氣功) 치료사를 만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치료사는 거의 맥이 안 잡히는 그를 진맥하고 "좀 빨리 왔으면 좋았을걸"이라며 물었다. "뭘 먹나요?" 저자가 안 먹는 걸 이야기하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건 자연의 이치"라고 일러준다. 20년 채식주의에 기진맥진한 저자는 그 길로 가게에 가서 참치캔을 사온 것이다.

◇"지구를 구해? 망쳤다!"

채식주의를 탈출한 저자는 온갖 자료를 섭렵해 채식주의의 정치적·영양학적 '무지'를 공격한다. 먼저 '농업이 지구를 구한다'는 주장부터 비판한다. 오히려 그는 농업이 지구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쌀, 밀, 콩, 옥수수 같은 일년생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인간은 땅(표토층)을 파괴했다는 것. 경작과 함께 표토층과 숲에 살던 수많은 동식물 종이 사라졌다. 그녀는 채식주의자와 환경주의자들이 '쇠고기 1파운드를 얻기 위해 소에게 4.8파운드의 곡물을 먹이는 관행'을 비판하는 데 대해 "왜 소가 곡물을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싼 옥수수를 먹여 더 많은 고기와 우유를 얻는 기업형 목축 때문에 더욱 많은 지구의 표토층이 사라진다는 것. 방목이라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묻는다. "왜 동물은 (인간이 먹으면) 안 되고, 식물은 되느냐"고.

요컨대 이런 논리는 모두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라는 것이다. '생명은 죽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자'고도 한다.

영양학적으로도 저자는 여러 학설을 통해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변호한다. '포화지방→체내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심장 질환'이란 인과관계는 엄밀히 증명된 바 없으며 오히려 곡물 즉 탄수화물에 기초한 식단은 포도당 공급을 너무 많이 했다, 너무 적게 했다 하는 사이클을 만들어 장기와 혈관 상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콩에 대한 '환상'도 지적한다.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콩을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트립신 억제 인자, 갑상선종 유발 물질로 알려진 고이트로겐, 호르몬을 교란시켜 여성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지속적으로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뭘 먹어야 하나

그런데 저자의 주장은 딱 여기까지만 나갔으면 좋을 뻔했다. 이 못 말리는 급진주의자는 또다시 '대안'을 내놓는 사족(蛇足)을 붙였다. 아직 '지구를 구하겠다'는 대의를 버리지 않은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는다. 가능하면 인공적인 경작보다는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기 주변에서 기르거나 채취할 수 있는 것을 먹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사회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말은 좋지만 차라리 '채식만 하자'는 것보다 더 어려운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