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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취임식 안 오는 미 국무장관

[조선데스크] 취임식 안 오는 미 국무장관

  • 이하원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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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2.24 23:06

    이하원 정치부 차장

    한국의 국책 기관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몸을 낮춰왔다. 가급적 새로운 권력자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보고서 발간은 자제했다. 그런 관례에서 볼 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내놓은 '2013~2017 중기 국제 정세 전망' 보고서는 예외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의 국제 정세를 전망한 이 보고서는 직설적이다. "2013년 2월 출범 예정인 (박근혜) 차기 정부는 21세기 들어 가장 어려운 대외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관련국들이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이견(異見)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관련국엔 '유동적인 한반도 정책'이란 소제목이 달린 미국도 포함된다. "미국에선 북한 핵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으며 북한 비핵화 추진보다는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미국 상황은 이 보고서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벨퍼과학국제문제 연구소장 등은 오바마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2·12 북핵 실험을 계기로 비핵화보다는 핵 확산 방지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존 케리 신임 미 국무장관의 목소리도 이들과 같은 톤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케리 장관은 김정은의 핵 도발 직후 "이번 사태는 단순히 북한이 유엔 결의안 세 개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 핵 확산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노력에 대한 위협"이라며 북핵 자체의 위험성보다 확산 가능성에 더 방점을 찍어 언급했다.

    미국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약화되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바마 2기 정부의 외교·안보 수장(首長)이 우리와 손발을 맞추기도 전에 핵 비확산을 더 강조하는 듯한 모습은 심상치 않다. 그가 한반도 문제에 적지 않은 식견(識見)을 가진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방한했던 미국의 한 전문가는 "케리 장관은 20년간의 북한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북핵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선에서 동결시키고 자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지난 10년간 미국의 국무장관들은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관례를 만들어왔다. 이번에 케리 장관이 중동 방문을 핑계로 이를 깬 것은 대북정책 조율에서 좋은 신호가 아니다. 아마도 박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게 부여된 첫째 과제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를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케리 장관으로부터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받고 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 급선무일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도전은 늘 한·미동맹 내부에서 먼저 왔음을 상기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