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19 23:22
품질 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졸속으로 학위 남발, 가치 떨어져
특수대학원 난립은 더욱 심각… 저성장 시대 사회 통합에
악영향
정원 감축과 부실 대학 퇴출 등 구조조정 없으면 발목 잡힐 것[참조] 거기다 반값 등록금이라,
5년제(공고+전문대) 살려야+독일 기술대학.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역사학

우리 사회의 심각한 학위 인플레이션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박사 학위 소지자도 넘쳐나서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닌 곳에서도 서로 "김
박사, 이 박사"로 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공무원들도 공직 근무를 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유행처럼
돼버렸다.
주경야독(晝耕夜讀) 정신이야 탓할 수가 없지만 생업을 가지면서 대학원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신통하게 학위들은 잘 받는다. 많은 대학과 학과가 품질관리를 치밀하게 하지 않고 학위를 졸속 남발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만들어 놨으니
학생을 모집해야 하고 또 졸업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악순환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 학위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푸대접을 탓하기 전에
과연 국내 학위가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학업에
제대로 임할 수 없었기에 결국 대학 졸업을 못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영부영 편법으로 학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쉽게 학사나 석·박사 학위를 받으니 학위의 희소가치가 없어지고 권위도 사라졌다. 한국이 고학력
사회일지는 몰라도 지성이 넘치는 사회는 결코 아니다. 특히 학벌 세탁용으로 전락한 다수 특수대학원의 심각성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우리나라만큼
특수대학원이 난립한 나라가 또 있을까.
미국 대학들이 세계 대학의 학부·대학원 과정 평가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철저한 학사 관리 때문이다. 유명 대학원 과정의 입학은 매우 까다롭고 학위 과정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 그 많은 미국 대학 중에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과 학과는 극소수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 평준화론자들이 흔히 언급하는 프랑스의 대학 제도는 언뜻 평준화된
듯 보이고, 평준화된 대학들의 환경은 열악하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수퍼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그랑제콜(Grandes �Bcoles)
시스템이 존재한다. 여기에선 입학, 수업 과정, 학위 수여에서 철저한 질적 관리를 한다. 일례로 한국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장관은 국립행정학교(ENA) 등 여러 그랑제콜을 졸업하면서 경쟁력을 키워갔다.
다행히 국내의 모든 대학과
학과가 느슨한 학사 관리를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카이스트의 학위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엄격한 교육 관리와 우수한 졸업생 배출로 그곳의
박사 학위는 누구나 인정한다. 한국의 일반 종합대학에도 권위를 가진 학과가 꽤 있다. 문과·이과에서 특출한 경우를 각각 한 개만 든다면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연세대 천문학과이다. 세계 일류급 교수진은 물론이고, 배출되는 학위 수여자들은 해외 유명 대학의 수준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기서 엄격한 과정을 거친 학위는 대학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상품으로 통용된다. 영문학처럼 학과 특성상 태생적으로 세계 일급 수준이
되기 힘든 학과들도 학문 균형상 꼭 필요하며, 이런 전공에서도 탄탄한 학사 운영이 진행되는 곳이 몇몇 있다. 결국 배출하는 학위의 권위는
자신들이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많아도 너무 많은 대학과 대학원 과정이 존재한다. 1996년 대학·대학원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한 '대학 설립 준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학과와 프로그램도 지나치게 다양하고 세분돼 있다. 이 많은 과정에서 모두 수준급 학위를
배출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이미 여러 번 대학·대학원의 난립과 부실화는 기대 수준 폭발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고도성장이 어려워진 지금 이런 상황은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돼 사회 통합의 거대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
저성장
시대에는 새로운 마인드와 해법이 필요하다. 유사 학과 통폐합과 대대적인 정원 감축, 수준 미달 대학의 퇴출과 같은 파격적인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특수대학원도 대폭 줄이고 면밀한 질적 검토 끝에 일반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과 학과의 숫자도 조정해야 한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대학·대학원 정원은 사회의 암(癌) 덩어리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현재 추진 중인 반값 등록금과 같은 대책은 환부에 마취 진통제만 투여하는
셈이다. 고통스럽지만 과감한 치료와 수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대한민국 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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