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03 22:51
어느 나라든 경찰은 살인·강도·절도 같은 현장 수사를, 검찰은 횡령·배임 등의 기업 비리를 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돼 있다. 강력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하거나 범인을 검거하는 능력은 수사 인력이 많은 경찰이 검찰보다 낫고, 유·무죄를 놓고 법률 적용과 해석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 기업 범죄 수사력은 법률 지식이 풍부한 검찰이 낫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도 대기업을 상대로 수사를 벌일 수는 있다. 최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제보를 토대로 CJ제일제당에 대해 수사를 벌여 CJ가 의사 266명에게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리베이트 45억원을 건네온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고 경찰이 '경제 민주화 공약 실천'을 명분으로 대기업들 손 좀 보겠다며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우스워 보인다. 앞으로 전국 수사 경찰관 1만8000명이 실적을 내겠다면서 대기업 상대로 요란스럽게 내사와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국민 가운데는 경찰이 할 일을 하는구나 하는 사람보다 정보 수집이나 내사 과정에서 확보한 기업 비리나 약점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나 하고 우려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경찰의 민간 기업 사찰(査察)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경찰이 기업 정보를 정치권에 갖다 바쳐 권력자들이 개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1991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바뀐 이래 역대 경찰청장 16명 가운데 8명이 뇌물 수수나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직권 남용 등 혐의로 기소됐다.
대기업 비리는 수사기관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소비자원·식약청 등에서 이중 삼중 감시 장치가 작동되고 있다. 경찰마저 대기업 비리를 수사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기업에서 불법·비리가 없어지겠다는 기대보다는 정부 모든 부처가 기업을 괴롭히는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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