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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악2

‘99’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낸 ‘하나’의 하모니

‘99’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낸 ‘하나’의 하모니
- 피아노 처음 유입된 사문진 나루터서 ‘99대 피아노 콘서트’

[대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흥얼거리는 아리랑과 흥겨운 박수소리가 넘치는 곳, 바로 피아노 콘서트 현장이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멜로디를 즐기며 신이 났다. 정숙하고 고상해야 할 것만 같다는 편견과 모르는 곡이 많아 지루하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괜한 것이었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와 트로트와 클래식을 버무린 곡들로 2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만 느껴졌다.

6일 저녁, 대구 사문진 나루터(현재의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소재, 화원유원지)에서 달성군 개청 99년을 기념해 ‘99대 피아노콘서트’가 개최됐다. ‘99대의 피아노가 한 곳에 모여 콘서트를 여는 것은 국내 아니, 세계 최초일 것’이라는 홍보 문구보다 더 시선을 끌었던 건 바로 콘서트가 열린 사문진 나루터에 담긴 스토리였다.

6일 저녁 사문진 나루터(현재의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소재, 화원유원지)에서 달성군 개청 99년을 기념하여 ‘99대 피아노콘서트’가 개최되었다.
6일 저녁, 대구 사문진 나루터(현재의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소재, 화원유원지)에서 달성군 개청 99년을 기념하여 ‘99대 피아노 콘서트’가 개최됐다.

사문진 나루터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성했던, 전국의 물류 허브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40년대 초 기록에 따르면, 사문진 나루에서는 한 해동안 20만 섬을 웃도는 양의 쌀이 오고 갔다. 반입된 물자의 40% 정도가 대구에서 소비됐고, 나머지는 충청, 강원, 호남 등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문화와 경제의 교류가 이뤄지는 나루터는 보부상 같은 외지인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공간이었고 이런 개방성은 새로 유입된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는 물의 특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이다. 이는 새로운 발전의 양분이 되었다. 사문진 나루터 또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대구로 신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왜 피아노인가’ 하는 점이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인 악기 중 하나이다.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선율을 부드럽게 이어가는 데 효과적이지는 못하지만, 이들 악기가 여러 개의 음을 동시에 연주하기 힘들고, 연주자가 음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반면, 피아노는 평균음을 가졌기 때문에 솔로 악기로도 손색이 없어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악기라고도 한다.
사문진을 통해 들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사진)
사문진을 통해 들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사진=한다우리 예술기획 블로그)

특히, 피아노 자체의 의미보다 장소와 연관된 인연에 더 의미가 있다. 사문진은 국내 최초의 피아노가 들어온 특별한 곳이다. 손태룡 한국음악문헉학회 대표는 ‘최초의 피아노 유입 과정’이라는 논문을 통해 1900년 3월 26일 사문진에 도착한 5대 선교사 사이드보탐(한국명 사보담)의 아내 에피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구 최초’일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의 피아노로, 역사적·문화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피아노 선율이 있고, 이야기가 더해져 더 아름다웠던 99대 피아노 콘서트는 시민들의 호응으로 더욱 뜨거웠다. 99대 피아노 콘서트가 있기 하루 전에 전야제로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콘서트도 있었다. 이루마는 “아내가 대구 사람이다. 대구는 나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라며 콘서트의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어갔다. 귀에 익은 동요, 가요, 클래식이 분위기를 돋웠다.

이선하(26세)씨는 “이루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었다,”며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미선(45세)씨는 “피아노 전공하는 동생이 이런 공연을 놓치면 되겠냐며 끌고 나왔는데 오길 잘 했다. 이루마 씨에게 반할 정도로 즐거웠다.”라며 즐거워했다.
5일 저녁 전야제로 이루마의 콘서트가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이 사라진 자리에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들어와 심금을 울렸다.
5일 저녁, 전야제로 이루마의 콘서트가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이 사라진 자리에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들어와 심금을 울렸다.

99대 피아노 콘서트가 있었던 6일 저녁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는 전야제에도 참석했던 시민들이 많이 와이었다. 이창욱(35세)씨는 “어제 공연을 보고 갔는데 오늘 꼭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왔다.”며 “가족끼리 왔는데 오후에 와서 도시락 먹고 산책하면서 기다렸다. 더 즐거운 공연이 되길 바란다.”며 웃어 보였다.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된 공연의 1부에서는 군대 행진곡, Hey jude를 비롯해 우리에게 익숙한 곡들로 꾸려졌다. 5천여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와 준비된 객석은 일찍이 다 차버리고 돗자리를 가지고와 멀리서 콘서트를 즐기거나, 서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이번 콘서트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전국 각지의 피아니스트 99명이 합주해 만들어낸 하모니가 달성의 밤을 가득 채웠다.(사진=경북도민일보)
전국 각지의 피아니스트 99명이 합주해 만들어낸 하모니가 달성의 밤을 가득 채웠다.(사진=경북도민일보)

2부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가 무대에 올랐다. “동창이 밝았느냐”하는 창과 함께 등장한 그는 한 손으로만 연주해도 무대를 꽉 채우며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아리랑을 신나게 연주하자 객석 곳곳에서는 “좋다~”하는 추임새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사용된 피아노는 그랜드 피아노 5대와 업라이트 피아노 94대다. 지난 2007년 인천에서 피아노와 신디사이저 555대가 동시에 연주된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피아노만 99대를 연주한 것은 처음이다. 주최측은 99대의 피아노가 넓은 공간에서 함께 연주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무대 곳곳에 집음기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박수지(23세)씨는 “임동창 씨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기억에 남는다”면서도 “99대의 피아노 콘서트라는 제목에 맞게 무대가 어떻게 꾸며질까 기대를 많이 했는데 평면적인 구조 때문에 정면에서 보기에 큰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99명의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할 때서야 비로소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고 아쉬움을 비쳤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자유로우면서도 카리스마있는 연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자유로우면서도 카리스마있는 연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문성환(56세)씨는 “이렇게 우리 고장에서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참 좋다. 고장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앞으로 피아노를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동네를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42세)씨는 “다 좋았지만 특히 재즈풍으로 연주할 때가 좋았다. 퍼커션 치는 친구의 리듬을 듣고 있으니 내가 어느새 그 친구처럼 박수도 치고 고개도 흔들고 있더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번 공연은 문화의 뿌리를 찾고, 나아가 그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결합해낸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문화의 축제’였다. 내 고장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적인 공연을 만들어냈고, 이 공연이 또 다른 문화를 창출해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문득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정책기자 이혜연(대학생) joyful42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