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여행

[태평로] 우리 극장에선 볼 수 없는 영화 '무게'

[태평로] 우리 극장에선 볼 수 없는 영화 '무게'

  • 신효섭 기사기획 에디터 겸 대중문화부장
  • 입력 : 2013.01.11 23:27

    신효섭 기사기획 에디터 겸 대중문화부장

    "눈부시게 아름답고 시적이며, 감동적이다." "진정한 걸작이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다른 삶을 극단적이지만 설득력 있는 보편적 정서로 잘 표현해냈다." 대단한 칭찬이다. 모두 한 영화를 두고 나왔다. 전규환 감독의 2012년 작품 '무게(The Weight)'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퀴어 라이온상'을, 에스토니아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와 인도국제영화제에선 각각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극장에선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영상물 등급 심의에서 '제한상영가(可)'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행 '영화·비디오물 진흥법'은 "누구든지 제한상영관이 아닌 장소 또는 시설에서는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해선 안 된다'(43조 1항)고 못 박고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 하늘 아래엔 '제한상영관'이 한 곳도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정서를 손상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영화 '무게'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구체적으로 시간(屍姦), 동성애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는 전언이지만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무게' 전에 베를린영화제 예술공헌상 수상작 '흔들리는 구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천국의 전쟁' 같은 수작(秀作)도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는 측은 "제한상영가는 사실상 사전 검열에 따른 작품 상영 금지 조치로 위헌"이라며 심의 제도 자체 폐지를 요구해 왔다. 반면 영등위 등은 "등급 심의는 유해(有害) 영상물로부터 아동·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제한상영가 등급은 영국·호주 등도 채택하고 있다"고 맞서 왔다. 예술 정책 측면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논란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 팬들에겐 어쩐지 '그들만의 다툼'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관객 입장에선 작품성이 뛰어난 제한상영가 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극장에서 볼 수 있느냐가 더 피부에 와 닿는 현안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정책 당국과 영화계는 어떻게 하면 '무게' 같은 작품에 팬들과 만날 기회를 줄 수 있을지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제한상영가 영화를 틀 극장을 확보하느냐이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대안이 하나 있다. '상시 제한상영관'이 아닌 '작품별 한시적 제한상영관'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반 극장이 제한상영가 영화를 틀겠다고 신청하면 그 작품에 한해 한시적으로 제한상영관 자격을 인정해 주는 방안이다. 사실 '영화·비디오물 진흥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한상영관'은 1년 내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만을 상영하라는 것이어서 극히 비현실적이다. 비싼 돈 들여 극장과 기자재를 확보한 사람에게 기껏 1년에 10편 안팎인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만을 틀라고 하는 건 돈 벌 생각은 말고 문화 자선사업이나 하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법적으로 어려울 것도 없다. '제한상영관에서는 제한상영가 이외 등급의 영화를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영화·비디오물 진흥법 43조 3항만 바꾸면 된다. '작품별 한시적 제한상영관' 제도가 생긴다면 인디플러스·씨네코드선재·스폰지하우스 같은 기존 다양성 영화 전문 상영관들이 적극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제 새 정부와 국회가 답을 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