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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하드보일드 세계 이것이 카뮈의 실존주의

흑백의 하드보일드 세계 이것이 카뮈의 실존주의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3.01.04 23:41

    이방인(일러스트판)
    알베르 카뮈 지음|호세 무뇨스 그림|김화영 옮김|책세상|144쪽|1만8000원

    뫼르소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책장 왼쪽에는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불을 비 내리듯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피스톨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는 문장이, 오른쪽에는 팔을 뻗어 권총으로 누군가를 겨눈 뫼르소의 삽화가 있다. 흑백의 일러스트와 소설 사이에 총성이 울리기 직전의 긴장이 팽팽하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78~79쪽)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일러스트판으로 나왔다. 출간(1942년)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에디션이다. 삽화를 그린 아르헨티나 출신 호세 무뇨스는 부조리로 가득한 이 실존주의 소설을 시각화하기 위해 흑과 백, 두 가지 색만 사용했다. 날카로운 선, 묵직한 명암, 그리고 과장과 그로테스크함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얼핏 보면 판화처럼 다가오지만 판화는 아니다.

    책세상 제공
    카뮈가 말했듯이 이방인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얼굴을 훔쳐보는 것을 즐긴다. 일러스트로 그려진 뫼르소는 험프리 보가트 등 20세기 초 하드보일드 영화 속 배우들과 카뮈의 얼굴이 묘하게 섞인 모습이다.

    어떤 독자는 이 소설에 대해 "비유나 상징을 전혀 쓰지 않은 채 사건 보고서와 같이 직접적 묘사로 일관하다가, 마치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서두처럼 마지막 구절에서 '네 번의 노크 소리'라는 직유를 사용하면서 압도적 힘을 불어넣었다"고 썼다. 이번 일러스트판은 단순하고 분명한 작가의 '백색 문체'와 70점의 삽화가 조응하면서 차가운 부조리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