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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교육 대통령)선거/책

평생 자신 돌아본 만델라 "聖人은 노력하는 죄인입니다"

평생 자신 돌아본 만델라 "聖人은 노력하는 죄인입니다"

  • 허윤희 기자
  • 입력 : 2013.01.04 23:03

    [인생에서 배운다] 넬슨 만델라… 만델라가 직접 쓴 미공개 기록 모아
    가족 앞에 약한 남자로 - 벤섬 수감 중 어머니와 아들 죽자 정치 생활에 환멸도
    '영웅'을 경계한 남자 - 석방 후 백인 응징보단 화해의 손길 내밀어
    "나는 항상 우려했다… 날 성인으로 볼까봐"

    나 자신과의 대화

    넬슨 만델라 지음|윤길순 옮김|알에이치코리아 | 564쪽|2만5000원

    "새벽에 집에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자미(아내의 애칭)가 우리의 올랜도 집 뒷문으로 들어오기에 껴안았다."(1980년 5월 23일)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넬슨 만델라(95)는 남아공 로벤섬의 차가운 감방에 수감됐다. 수감번호 '466/64'. 지독한 기록벽에 보관벽까지 있었던 그는 수감 중의 고독과 내밀한 일상을 탁상용 달력에 토막글로 남겼다. 남아공의 저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린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위인. 하지만 옥중 일기 속 그는 아내의 면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가족 품에 안기는 꿈을 꾸던 '보통 남편'이자 '아버지'다.

    (오른쪽 사진)젊은 시절의 만델라.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이 책은 만델라가 직접 쓴 미공개 기록을 추려 모은 독특한 형식이다. '나 자신과의 대화(원제 Conversations with Myself)'라는 제목처럼 1960년대 초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하면서 쓴 일지, 27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쓴 편지와 일기, 사적인 대화 녹취록, 대통령 재임 기간 주고받은 각종 서한과 연설문 등 문자 그대로 '자신과의 대화'를 담았다. 덕택에 남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아닌 인간 만델라, 분노하고 갈등하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민얼굴이 비로소 드러난다.

    ◇가족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만델라는 석방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곧 석방될 것"이라고들 했다. 정치범이었기 때문에 정치 상황이 변하면 석방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결국 수감생활은 27년간 이어졌다.

    투사 만델라도 가족 이야기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육십이 다 된 어머니를 돌보고,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 사랑을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정치 활동은 그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때 장남 마디바(템비)가 다섯 살이었다. 한번은 그 애가 제 어미에게 내가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과 놀며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먹이고 재우는 것을 좋아했기에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정치 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괴로웠다."

    지난 2008년 구순(九旬)을 맞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넬슨만델라재단이 발표하는‘90회 생일 기념행사 계획’을 듣고 있다. /블룸버그뉴스
    불행은 잇따랐다. 1968년엔 어머니, 이듬해엔 장남이 스물넷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어머니를 묻어 드리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델라는 어머니와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인간적 호소도 소용없었다.

    ◇불안과 분노

    감옥은 분노를 세 끼 양식 삼아 버티는 곳. 처음 로벤섬에 수감됐을 때 거친 백인 교도관은 "여기가 바로 그 섬이다. 너희는 여기서 죽는다"고 그들을 맞았다. 처음에는 6개월에 한 번씩 편지 한 통과 짧은 면회 한 번만 허락됐다. 그 와중에 아내 위니도 수감됐다. "나는 완전히 울분에 젖어 있는 것 같소. 나의 모든 부분이, 살과 피, 뼈와 혼이, 완전히 무력해 견디기 힘든 지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당신을 전혀 도울 수 없다는 게 어찌나 원통하고 분한지 말이오."(1970년 수감된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하지만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만델라는 감옥을 수행처로 삼는다. 1975년 2월 1일, 아내 위니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다. "(전략) 감옥이 자신을 알고 깨우치기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냉철하게 규칙적으로 살펴보기에 이상적인 곳임을 발견할지도 모르오.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화해의 리더십

    1990년 2월 11일. 72세의 만델라는 마침내 석방됐다. 그는 백인 응징을 외치며 흥분한 8만명의 흑인 청년들 앞에서 역사적 연설을 한다. "당신들의 무기를 바다에 버려라." 남아공 인종 화해의 분수령이 된 순간이다. 출옥 후 확실히 그는 "부드러워졌다". "젊을 때는 아주 급진적이고 모든 사람과 싸우려고 했지만, 더 이상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은 하고 싶지 않았다."(414쪽)

    지도자로서 만델라는 어린 시절 경험한 아프리카 전통 족장 제도와 섭정의 리더십을 모델로 삼았다. 부족회의에선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고, 섭정 역시 모진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도자는 아무리 날카로운 비판이라도 조직 내부에서 나오는 건설적 비판이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도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도록 격려하고, 그러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후 만델라는 수감 시절에 대한 '향수'(?)를 종종 토해냈다. "그때는 자기만의 일상이 있었고, 동지애가 있었고,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었다. 읽고 공부할 시간과 편지 쓰고 명상할 시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 비서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간수들"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6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1995년 국내에서도 출간된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두레)이 사실은 '집단 창작물'이었다는 것도 이 책에서 드러난다. 만델라가 초안을 쓰되, 여러 동지의 검토를 거쳐 최대한 객관적인 글이 되도록 수위를 조절한 것. 스스로의 업적에 도취해 다른 사람을 본의 아니게 깎아내리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런 문장으로 마감한다. "감옥에서 심히 걱정했던 것 하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바깥세상에 투사한 허상, 내가 성인(聖人)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는 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 방대한 원자료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위인의 속살을 읽는 즐거움이 적지 않지만, 인용된 자료의 맥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고 엮은이의 해석이 없는 점에선 불친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