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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하늘 닮은 머리, 땅 닮은 발 … 사람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

 

[BOOK] 하늘 닮은 머리, 땅 닮은 발 … 사람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

중앙일보 10/29 00:23
동의보감 :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지음, 그린비
448쪽, 1만7900원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編鵲)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두 형이 있었다고 한다. 형제 모두가 의술의 대가였는데, 큰형은 병이 걸리기 전, 곧 미병(未病) 단계에서 치료를 했다. 환자가 되기 전에 이미 손을 썼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명의인 줄 모른다. 작은형은 초기단계에서 병을 고쳤다. 때문에 사람들은 소소한 병을 고치는 아마추어 정도로 여겼다.

막내인 편작은 병이 극심하거나 불치병을 고치는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 집안에선 편작을 가장 하수로 취급했다고 한다. 한의학계에 전해지는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정확하게 단정하기 힘들지만, 이런 전설에 내포된 의미는 오늘 우리의 의학상식을 되새겨보게 한다.


편작의 두 형이 보인 경지의 의미는 실제 아파 보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은데,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도 그런 경험을 했다. 40대 초반이던 10년 전 몸 속에 작은 종양이 생긴 걸 알게 됐다. 병원에선 수술 이외의 방법이 없다고 했으나, 수술 받기가 싫었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병이 생겼고,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는지를 반성하면서, 1610년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고미숙은 아픔이 오히려 그를 살렸다고 고백한다. 몸과 우주를 보는 눈을 새롭게 뜰 수 있었다는 의미다. 자신의 치병(治病) 경험에 바탕을 두고 동양(주가,차트)의학의 인문학적 의미를 풀어낸 이 책이 출간된 배경이다.

편작의 두 형이 했던 것과 같은 삶의 지혜를 아프지 않고 터득할 순 없을까. 저자가 병의 예방을 중시한다고 해서 미리미리 건강검진을 잘 받자고 주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의사가 읽는 것과 인문학자가 읽는 느낌의 차이를 ‘고미숙의 동의보감’에서 느껴볼 수 있다.

저자가 허준의 『동의보감』을 통해 얻은 새로운 가치는 일종의 ‘삶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동양(주가,차트) 전통적 용어로 표현하는 ‘양생술(養生術)’이다. 양생은 곧 삶의 기술이자 삶의 지혜다. 유교·도교·불교 등 동양(주가,차트) 전통의 사상을 관통하는 가치는 ‘양생’이란 단어로도 집약될 수 있는데, 그 같은 생각이 구체적으로 꽃을 피운 게 동양(주가,차트) 전통의학이었다. 저자는 『동의보감』이 전통의학의 가치를 더욱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냈다.

저자는 허준을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철학자이자 글쓰기의 달인으로 재평가한다. 허준의 책은 『황제내경』과 『상한론』같은 수많은 동양(주가,차트)의학서의 인용으로 채워졌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동의보감』은 대개 분류체계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받곤 한다. 몸 안의 세계(내경)-몸 겉의 세계(외형)-병의 세계(잡병)-약물의 세계(탕액)-침구의 세계(침구)로 나눈 목록은 허준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고미숙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허준의 가장 큰 독창성은 질병이 아닌 생명과 양생을 최고의 목표로 제시했다고 보았다. 고미숙의 언어로 풀면,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앎의 주체’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적 사유에 의하면 인간의 몸과 우주는 연결되어 있다. 『동의보감』의 첫 구절이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관점은 근대 서양과학이 도입되면서 잊혀지고 단절되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저자가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동료들과 『동의보감』을 놓고 공부해본 결과 그 어느 서양책보다도 다들 이해를 쉽게 하더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지혜로 저자가 또 중시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이다. 『동의보감』에는 우리 몸에 사는 수많은 이물질을 ‘충(蟲)’이라고 통칭하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온갖 벌레, 박테리아와 함께 하며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인간의 삶은 질병과 죽음이 있음으로써 그 의미를 더한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잘 사는 기술로서의 양생은 일종의 몸의 수련을 필요로 하는데, 자신의 일상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면 족하다고 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걷기라고 한다. 소설·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우리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