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06 11:00 | 수정 : 2013.07.06 13:12
최성수.

가요계의 큰 형님이 떠났다. 예당컴퍼니 회장이자 가수 양수경의 남편인 변두섭 씨가 지난 6월 4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6월
6일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발인식에는 수많은 연예계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중 영정사진을 든 사람은 바로 가수 최성수였다. 그는 이
죽음에 대해 알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최성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면 항상
‘괜찮다’고 하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였어요. 그래서 괜찮은가보다 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네요.”
최성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한숨을 쉬었다. ‘미리 알았더라면’라는 후회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오랫동안 수면제를 복용해 왔고, 나중에는 조울증도 왔어요. ‘약을 먹어도 두 시간밖에 못 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암을 이겨낸 사람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그는 아직도 변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아마 수면제를 오랫동안 복용해 와서 약 부작용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을 먹은 것 같다”면서, “죽을
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양수경 씨가 가장 힘들겠죠.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이게 정말인가 하고 실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아직 아이가 13살밖에 안 됐는데….”
고 변두섭 예당컴퍼니 회장.

최고의 매니저이자 좋은 형 변두섭
두 사람의 인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두섭 회장님은 친한 형이자 과거 제 매니저였어요. 가수 최성수를 만들어준 분이에요. 가수와 매니저로 동거동락했죠.
우리는 계약서도 없었어요. 그만큼 서로 신뢰하는 사이였죠.”
이들의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람은 매니저
지망생, 또 한 사람은 무명 가수였다. 변두섭은 언젠가 이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매니저로서 나의 꿈이 예술의 전당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최성수는 자기만의 피아노 한 대를 갖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둘의 꿈은 다르기도 했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싶다는 데에선
일치했다. 그래서 우리는 뜻을 모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높이 샀다.”
두 사람은 첫 음반을 내놓기까지 수없이 부딪쳤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가수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매니저의 충돌이었다. 결국 ‘남남’을 타이틀로
내세운 앨범을 냈다. 그러나 무명 가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돈을 빌려 콘서트를 했지만, 관객은 고작 네 명. 절판을 고려하고 있을
때쯤에야 사람들 사이에서 ‘남남’이 퍼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느닷없이 인기가 치솟았다. 이후 2집 <동행> 역시 대박을 터트렸고,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마련한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맨손으로 시작해 예당을 이만큼이나 이뤄낸 분이에요. 충무로
사무실에 간판도 없이 시작했는데… 정말 열심히 하셨던 분이죠. 천상사업가예요. DJ 출신이라 음악적인 감각도 상당해서 많은 가수들을
발굴해냈죠.”
예당엔터테인먼트는 1981년 이름뿐인 사무실 ‘예당기획’으로 출발해 1992년 ‘예당음향’이란 법인을 설립했고,
2001년 코스닥 등록을 했다. 광주에서 무작정 상경해 레스토랑 웨이터를 하다가 DJ가 됐고, 연예 매니저가 됐다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다양한 사업을 이끄는 회장이 된 뒤에도 그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변 회장은 저와 차를 타면 언제나
앞자리(조수석)에 타요. ‘왜 그러냐’고 하면 ‘너는 내 가수잖아’라고 했죠. 입버릇처럼 ‘회사 그만두면 나는 양수경, 최성수 매니저만 할
거야’ 하던 사람이었어요. 제 평생의 매니저죠.”
받은 은혜 갚으며 살아가야…
최성수가 한때나마 사업을 경험하게 된 것도 변두섭 회장 덕이다.
그는 최성수를 예당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예당아트TV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당시 예당아트TV 일부 임원단에서 반대가 있었는데도, 그는 기어코
최성수를 대표로 기용했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친분과 사업 파트너로서 신뢰가 깊었다.
“같이 일하던 시절 제가 돈이 안
되는 연극이나 뮤지컬에도 많이 출연하겠다고 하면서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하지만 그만큼 예술 분야에 대한 저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줬기
때문에 일을 맡긴 것 같아요.”
최성수는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에 이종환을 보내고 왔다. 그는 이종환의 영결식에 참석해 추도사
대신 고인의 애창곡을 불렀다.
“이종환 씨는 나를 가수로 데뷔시킨 사람이에요. 제게 의미 있는 두 분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무상이라기보다는 ‘삶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라는 회환이 들어요.”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최성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내 모든 업보를 끊어주고 가셨어요. 너무도 인간적인 두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였고, 또
어떤 의미를 남겨주고 떠났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겠어요.”
최성수는 장안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모은 <시가> 출반을 앞두고 있다.
YG 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의 사업이 자리 잡고, 가수 이승철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데에는 고 변두섭 회장의 힘이 컸다. 그는 아내 양수경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인생은 미완성’의 노랫말처럼 미완성으로 가다
고 변두섭 예당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처음 제작한 음반은 바로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이었다. 그의 인생도 미완성인 채로 삶을 마감했다.
변두섭 회장은 음악다방 DJ를 하다 음반기획사 예당을 설립했고, 지난 2001년 1월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사업 범위를 드라마와
게임 제작 등 문화콘텐츠 전반으로 넓혀왔다.
최성수, 양수경, 조덕배로 시작해, 1990년대에는 듀스, 룰라, 김경호, 소찬휘,
녹색지대, 솔리드, 젝스키스, 임상아, 조PD, 이승철, 이선희, 이정현, 박강성, 원타임, 지누션, 서태지, 싸이 까지…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음악들은 무궁무진하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제작자로 변신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 그의 도움을 받아
지누션과 원타임을 제작해 제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쉬지 않고 일했고, 후배들도 도왔다.
그의 사업은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됐다.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와 2003년 <천국의 계단> OST를 제작했으며 2003년
게임회사인 예당온라인을 통해 게임 사업에 진출했다. 2006년 영화 투자배급사인 쇼이스트를 인수하고 해외자원 개발업체인 테라리소스를 통해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음악을 듣곤 했다. 해외출장을 제외하고는 1년에 단 하루도 늦게
출근하는 일이 없었다. 그가 들었던 음악은 음원차트 50위권의 노래. 최근 트렌드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인색했다. 밥 한 끼에 5천 원 이상 들이지 않았고, 걸어서 출퇴근할 정도로 검소했다.
애도하는 연예계, 신정환도 조문해
변두섭 회장의 조문객만 봐도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먼저 예당 소속 가수인 임재범과 알리, 국가스텐 등이 한걸음에 빈소로 달려왔고, 그룹 ‘캔’의 이종원과 ‘소방차’의 김태형,
최성수, 조PD 등 가수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하지원과 한은정, 유동근, 김승우, 송새벽 등 배우들도 빈소를 찾았다. 한때는 줄을 서서
조문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편 신정환은 고 변두섭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한 뒤 하루 만에 빈소를 찾았다. 신정환은
조문행렬에 동참한 뒤 조용히 고 변두섭 회장을 조문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환과 고 변두섭 회장의 인연은 지난 2000년 초반 컨츄리
꼬꼬의 앨범을 예당음향에서 발매하며 시작됐다. 신정환은 일이 있을 때마다 고 변두섭 회장의 충고와 위로를 받는 등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신정환의 조문은 지난 2010년 불법 도박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남부교도소로 옮겨져 수감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1년 가석방된 뒤 두문불출 끝에 모습을 드러낸 터라 관심을 모았다.
한편 가수 이승철은 자신의 트위터에 “변대윤 회장님. 제
6집 ‘오직 너뿐인 나를’, ‘너의 곁으로’, 일본 ost ‘사요나라’를 만들어주신 가요계 큰 형님이신데. 이렇게 일찍 저희 곁을 떠나시다니요.
형님은 일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래요.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이라는 글을 올렸다.
룰라의 멤버 이상민 역시 트위터를 통해
“룰라에게 큰 힘이 되어 주시고 저를 인정해주시고, 제가 힘들 때 모든 면으로 도와주셨던 회장님께 전 이제 어떻게 보답해드릴 수 있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슬픔을 전했다.
예당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인 씨클라우드는 <쇼!음악중심>에 출연해 “회장님이
있어 우리가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회장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대 위 열정 잊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라고 외치는 모습이
방송돼 시청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여성조선] 최성수가 전하는 故 변두섭 사장의 죽음](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307/04/2013070400990_3.jpg)
그들은 왜 죽음을 택하나? 연예산업의 허와 실
미망인 양수경은 향후 경영에 참여해 고인이 진행하고 있던 사업들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수경은 “퇴근 후 집에서까지 밤잠을
설쳐가며 사업구상에 몰두하던 회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라도 본인과 변차섭 예당미디어 대표이사 등 남은
유족들이 신임 김선욱 대표이사를 도와 고인이 살아생전 다하지 못했던 매니지먼트 사업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변두섭 회장의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고, 막연히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추측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 6월 12일 예당컴퍼니는 회사가 보유한 코스닥 상장사 테라리소스의 보통주
4천586만7천29주 가운데 3천903만7천29주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분실 신고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예당컴퍼니는 “분실 수량
일부를 변두섭 전 대표이사가 횡령해 개인채무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로부터 6일 뒤인 18일 예당컴퍼니는 공시를 통해
“변 전 대표가 회사가 보유 중인 자회사 테라리소스 주식 3천753만7천29주(약 129억 원)에 대해 횡령한 혐의를 발견했다”며 “이는 변 전
대표이사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신임대표이사가 업무 파악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이고 구체적인 혐의의 내용 및 금액은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추후 진행경과에 따라 민·형사상의 필요한 모든 법적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연예계 종사자들 잇단 죽음
변 회장은 그동안 측근들에게 지금의 가요계 산업질서에 대해 자주
탄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변 회장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지난 1월에는 <아이리스>의 제작에 참여하고, 영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을 기획한 조현길 미디어앤파트너스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아이리스>로 성공했지만 이후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업에 손을 댔으나, 자금난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유명 드라마 OST를 제작해온 양모 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KBS
<제빵왕
김탁구>, MBC <신들의 만찬> 등 인기 드라마의 OST를 제작하며 ‘OST 제작의 미다스 손’이라 불린 제작자였다. 그는
사업을 운영하며 재정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의 자살을 통해 OST 사업의 불투명한 수입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제작사와 가창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OST 제작구조에서 양 씨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한 연예계관계자는 “대기업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장악해가는 현실”이라면서 “연예산업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라고 분석했다.
최성수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사람들이 자꾸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연예산업 안에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 있다.
“연예계가 한류바람을 타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빈익빈
부익부는 존재해요. 싸이나 소녀시대와 같은 대형 가수들이 나오지만 나머지는 힘들죠. 기획사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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