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09 03:02
피아니스트 손열음 독주회
앙코르 7곡, 쉴 틈 없이 이어져… 아찔한 기교에 휘파람 선율
흥겨운 재즈 분위기가 가미된 20세기 미국 작곡가 윌리엄 볼컴의 '에덴의 정원'을 첫 앙코르로 들려줄 때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찔한 기교가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왼발로는 무대 바닥을 쿵쿵 누르며 리듬을 빚었고, 양손으로 피아노 뚜껑을 두드리며 박자를 만들었다. 선율을 휘파람으로 부는가 하면, 팔꿈치로 건반을 '찍어 누르며' 혼돈을 표현했다. 짬짬이 객석을 향해 박수를 두 번씩 치면서 반응을 이끌어내자, 앙코르는 자연스럽게 관객과 손열음의 대화로 변했다.
7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손열음. /크레디아 제공

앙코르를 마친 손열음은 손짓으로 건반을 가리키며 "더 원하세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쇼팽의 '연습곡' 등 단골 연주곡에 이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 3악장을 통째로 피아노로 편곡해서 다섯 번째 앙코르로 들려주자, 25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의 환호도 더욱 높아졌다.
전·후반에 흠잡을 구석이 없었던 손열음의 열 손가락도 네 번째 앙코르부터 조금씩 풀려 갔다. 하지만 그는 작심한 듯이 '앙코르 질주'에 감속 페달을 밟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편곡한 버전에 이어서, 일곱 번째 앙코르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한밤의 작별 인사로 들려주자 비로소 청중도 아쉬움을 덜었다. 2시간 40분에 이르는 연주회 뒤에도 손열음은 밤 11시 15분까지 팬 사인회에 정성껏 응했다.
손열음의 리사이틀은 연주회 이전부터 시작됐다. 직접 작품 해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작곡가 쇼팽의 발라드와 마주르카, 왈츠 등을 들려주기에 앞서 "중간이 없어 양극단을 오가는 감정선이야말로 쇼팽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프로그램에 썼다. 첫 곡인 쇼팽의 발라드 2번 작품 38번에서 한껏 절제된 장조와 폭발하는 단조의 짙은 대비로 양극단의 감정선을 펼쳐 보인 손열음은 '화려한 대왈츠'에서는 한껏 가속을 내면서 화려함을 강조했다. 옅은 스모키 눈 화장과 검은 드레스는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을 연상시켰다.
쇼팽으로 '준비 운동'을 마친 손열음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알캉의 '이솝의 향연'에서 무시무시한 건반 위의 곡예를 펼쳤다. 무뚝뚝하게 출발한 주제가 관습적 진행에서 조금씩 비켜나면서 기괴하고 위트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변주곡을 그는 '2단 평행봉'처럼 날렵하게 조리했다. 마지막 곡인 러시아 현대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의 연습곡에서는 그동안 꼭꼭 감춰 놓았던 재즈 피아노의 장기가 작렬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처럼 주류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재즈와 현대음악까지 비주류의 감수성을 껴안은, 모방이 불가능한 예외적 연주였다.
[2]
입력 : 2013.02.14 23:52
[5개 도시 독주회 여는 손열음]
"앙코르 곡은 재즈도 연주… 레퍼토리, 고심해서 선택
세상의 피아노곡 다 치고파…
40대까지는 앞만 보고 간다"
19일부터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에게는 앙코르곡 선정도 탐구 대상이다. 그는“앙코르는 연주회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곡을 그날그날 고심해서 고른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27)의 음악회에 간 팬들은 언제나 조마조마한 기분이 된다. 앙코르에서 언제 어떤 대담한 곡을
들려줄지 모르기 때문. 지난해 5월 영국의 실내악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의 협연 때도 그랬다. 앙코르로 모차르트의 친숙한
'터키 행진곡'을 치는가 싶더니 곧바로 초절기교의 변화무쌍한 재즈 스타일로 탈바꿈했다. "터키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Fasil Say)가 편곡한
버전이에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연주회 당일에 급히 악보를 다운 받았죠."
독일 하노버에 머물고 있는
그와 11일 전화 인터뷰했다. 그 자리에서 악보를 읽고 소화하는 초견(初見)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손열음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
앙코르다.
오는 19일부터 전국 5개 도시에서 열리는 독주회에서도 손열음의 '피아노 탐구생활'은 계속된다. 쇼팽의 친숙한 독주곡에
앞서서는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알캉의 '이솝의 향연'을 연주한다. 후반부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8번이 끝난 뒤에는 러시아의 현존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76)의 연습곡 세 곡을 덧붙인다. 작품은 물론, 작곡가 이름마저 낯선 그의 레퍼토리에 고심하던 공연 주관사는 "이런 것이
바로 초절기교!"라는 선전 문구를 붙였다. 알캉과 카푸스틴의 작품은 그에게도 첫 도전.
"미식가들이 이 세상의 진수성찬을 다
먹어보기를 바라듯이, 저는 세상의 모든 피아노곡을 다 치고 나서 죽고 싶어요. 낯설거나 좀처럼 연주하지 않는 곡들을 넣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적어도 40대가 될 때까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려고요."
어렵게만 보이는 이 작품들에도 뚜렷한 흐름은 숨어 있다.
알캉은 리스트, 쇼팽과 교유했던 작곡가이며, 러시아의 카푸스틴은 프로코피예프 후세대 작곡가다. 19세기 낭만주의든, 현대의 러시아가 됐든
'피아노 비교체험'의 기회인 셈. 손열음은 "콩쿠르처럼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나열해서 연주하는 것은 사절"이라며 "언제나 음악적 주제와 이야기가
깃든 연주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손열음은 관객으로서도 '개근생'이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지휘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협연이 끝난 직후에는, 사흘 연속 서로 다른 공연장에 관객으로 나타났다. 손열음은 "관객으로 갈 때는 철저하게 애호가의
심정으로 편하게 즐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현재 손열음이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는 재즈 피아노. 지난 2006년 독일 하노버
음대로 유학 간 뒤부터 짬날 때마다 틈틈이 재즈 피아노를 배운다. 그는 "즉흥 연주는 시작도 못 했고 여전히 재즈 화성을 배우는 중"이라며
"클래식 곡을 연주할 때는 귀에서 좀처럼 쓰지 않았던 부분을 쓰는 것 같아서 언제나 새롭고 신기하다"고 했다. 피아노에 관한 한, 손열음의
'탐구 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열음 피아노 독주회, 2월 1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23일 경남 양산문화예술회관, 3월 1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5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7일 서울 예술의전당, 1577-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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