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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친하면 시장경제는 망한다 + 국부론+ 빈곤의 종말.

[1]'끼리끼리' 친하면 시장경제는 망한다

  • 이종은·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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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6.01 03:10

    - 경제 불평등의 위험성
    자본력 중심의 가치관 방치하면 '대중의 분노' 불러 체제 불안 가중

    - 인간적 '포획'이 불평등 불러
    정말로 '인간적으로' 봐야하는 건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의 '불평등'

    
	불평등의 대가 표지 사진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
    열린책들|619쪽|2만5000원


    며칠 전 가수 보노의 연설을 들었다.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한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가고 있고 이것은 열정과 기금의 결과"라는 얘기였다. 보노는 어쩌면 우리가 위대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취업, 결혼, 집, 노후를 걱정하는 소리뿐이다. 왜 이렇게 삶이 고단한 걸까.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와 2011년 튀니지 노점상 청년의 분노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실업과 빈곤이 글로벌 문제이며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을 믿고 세율을 낮춰 투자를 유인하는 게 1980년대 조세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포착해내는 데 각국이 협력하는 분위기다. '조세 정의'로 기조가 바뀐 것이다. 고령화되고 실업이 넘쳐나는 경제에 복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각국 정부들의 절박함이 이런 정책 변화를 끌어냈을 것이다. '탈(脫)규제'에서 '규제'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 책은 그간 미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심각한 부의 불균등이 초래되었는지,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일러준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 남 탓하고 싶은 마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영합하는 책이 아니다. 경제학자로서 집단 지성의 수준을 높여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하겠다는 의무감, 어떤 경제정책이든 부작용이 있지만 빛이 그림자보다 강하다면 빛을 얘기하겠다는 대담성, 실명을 거론할 만큼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 돋보인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의 탄탄한 논리를 녹여내 향후 각국의 경제정책이 지향하고 학계가 정교하게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엇인지 간접 제시했다.

    예를 들면 거시경제정책이 불평등에 기여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은 이렇다. 경제가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며 가난한 은퇴자를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니, 조그만 인플레이션 상승에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경제는 저성장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멕시코와 남미 국가들에서 이미 목격했다. 불평등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거나 불평등 문제에 손을 대면 경제가 타격을 입는다는 주장은 틀렸다. 성장은커녕 '아랍의 봄'처럼 체제 불안이 유발될 수 있다. 불평등 방치의 대가(代價)다.

    
	‘월가(街)를 점령하라’시위 1주년을 맞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저항의 상징으로 시위대가 사용한 17세기 영국인‘가이 포크스’가면을 쓰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월가(街)를 점령하라’시위 1주년을 맞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저항의 상징으로 시위대가 사용한 17세기 영국인‘가이 포크스’가면을 쓰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불평등과 관련해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 개념은 '포획'이다. 인간적으로 친해지면서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이 되는 쪽의 관점과 이해관계 편에 서게 되고, 공익을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포획의 병폐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포획의 여러 사례 중에는 저자의 목격담도 있다. 두 명의 훌륭한 연방준비은행(FRB) 이사 후보자가 "비판적인 경제학자가 FRB에 입성하면 자신들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우려한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영향력 행사로 낙마했다는 것이다. 전 FRB 총재 볼커는 "금융권 규모가 커져 규제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금융자본주의화된 미국의 저변에는 이런 '포획'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원인은 다른 데도 있다. 과학기술 발달, 그리고 생산성 향상은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 감소를 유발한다.

    책의 마지막 장은 이 상태로 놔두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시장경제, 친해지면 쉽게 포획되는 인간적인(?) 경제주체로 이루어진 경제 틀 안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인류의 진보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들은 금융계의 큰손들에 비해 훨씬 적은 보수를 받는다. '시장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 시장주의자들의 오랜 믿음이지만 실제로 정해진 보수가 기여도에 비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금융권 종사자들이 금융 위기 때마다 상여금을 챙긴 사례를 들며 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는 방향으로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탈세를 차단하는 것도 불평등 완화책으로 제안된다. 저소득층에도 질 높은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그들이 높은 소득 구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모두 갖고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 경제다. 이 책은 미시경제와 거시경제를 번갈아 보여주며 독자를 향해 "현실감 있는 정책을 요구할 만큼 경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또 '포획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포획하고 포획 당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만난 적도 없는 세상 누군가의 불평등에 마음을 쓰지 않으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다고 역설한다. 이불이 수 십장 깔려도 맨 밑바닥 강낭콩의 존재를 알아내는 안데르센 동화('공주와 강낭콩') 속 공주의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올해 70세. 미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정보 비대칭성의 결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현재 컬럼비아대학 교수.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경제학자 중 하나다.

    
	빈곤의 종말과 국부론 표지 사진

    ['불평등의 대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절대 빈곤'은 절대 해결 불가?
    이기심도 잘 쓰면 公益이 된다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김현구 옮김·21세기북스)을 권한다. 스티글리츠가 상대적 빈곤, 즉 불평등을 주로 말했다면 이 책은 절대 빈곤 퇴치에 대해 논한다. 2000년에 시작되어 2015년까지 세계 빈곤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현재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추적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담고 있다.

    경제학의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김수행 옮김·비봉출판사)도 함께 읽을 만하다. 시장경제의 본질을 가장 원초적으로 전달해주는 책이다. 이기심이라는 인간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러한 한계가 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하면 공익이 될 수 있다는 멋진 결과를 보여준다. 물론 이 세계에서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도 없다. 시장의 완전함을 이해해야 시장의 불완전함과 불평등, 빈곤 문제도 이해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