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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료/놀라운 의학 기술

중증환자는 맨투맨 관리… 당뇨병 환자 발톱까지 깎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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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환자는 맨투맨 관리… 당뇨병 환자 발톱까지 깎아줘

  • 로스앤젤레스=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 2013.06.01 03:08

    [美서 돌풍 일으키는 예방 진료 민간 서비스 모델 '케어모어(Care More)']

    당뇨 궤양으로 인한 발 절단 비율 美 평균보다 60% 낮아… 의료비 지출 확 줄여

    병원·진료비 총액 정부서 받아, 지출 줄여야 수익 나는 시스템… 건강관리·질병예방 전력 투구
    처방 약물 제대로 복용하는지 수시로 전화하고 방문해 확인
    낙상환자에겐 하체 단련시키고 칼슘제 무료로 나눠주기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동북부 지역 주택가에 자리 잡은 '케어모어(Care More)' 치료센터에 들어섰더니 우리에게 생경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가 맨발을 드러낸 채 진료대에 편히 앉아 있고, 당뇨병 발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치료사가 환자 발톱을 정성스럽게 깎아주고 있었다. 당뇨병 환자 마이클(73)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기 와서 발톱을 깎는다고 했다. 비용은 무료다. 마이클씨는 "의료진이 발톱을 깎은 이후로는 한 번도 발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케어모어 치료센터가 환자 발톱을 깎아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뇨병 환자는 말초 혈액순환이 잘 안 돼 조그만 발의 상처도 피부 궤양으로 커지고, 나중에는 괴사가 일어나 발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생긴다. 이렇게 증세가 악화돼 의료비 지출이 커지느니, 케어모어가 환자들의 발을 철저히 관리해주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케어모어 치료 센터의 치료사가 당뇨병 환자의 발톱을 정성스럽게 깎아주고 있다.
    미국의 케어모어 치료 센터의 치료사가 당뇨병 환자의 발톱을 정성스럽게 깎아주고 있다. 당뇨병 환자들이 발 관리를 잘못해 병을 키우는 상황을 막기 위한 예방 서비스다. /김철중 기자
    15%의 중증 환자가 의료비 70%를 차지

    LA에 본부를 둔 케어모어는 정부 세금으로 의료비가 지원되는 65세 이상 계층(메디케어 연방보험 가입자)의 건강과 질병 관리를 대행해주는 민간 의료보험회사다. 미국에는 이런 의료 관리 대행 민간 보험회사가 많은데, 케어모어도 그중 하나다.

    메디케어 연방보험 가입자의 경우, 치료비의 5~30%는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한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유사하다. 케어모어는 지역별로 65세 이상 메디케어 가입자 5000여명을 관리해주면서 그들에게 들어가는 1년간의 병원비와 진료비 총액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가입자들의 평균 나이는 76세.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능한 한 의료비 부담을 낮춰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이 케어모어가 요즘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앞선 통합 진료 시스템과 질병 예방 서비스 덕분이다. 케어모어는 전체 환자 가운데 중증도가 높고, 질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약 15%의 환자가 전체 의료비의 70%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해당 질병도 당뇨병, 천식, 울혈성 심부전, 만성 신부전, 우울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등 몇 개에 국한됐다. 이들의 병세가 악화하지 않도록 집중 관리해서 입원 치료를 줄이면 병원비가 대폭 절감돼, 케어모어도 그만큼 수익을 내는 것이다.

    케어모어를 통한 의료비 절감 시스템, 케어모어의 '통합 돌봄'이 낸 효과
    중증 환자마다 매니저 붙여 관리

    케어모어는 포괄치료사(의사), 간호 실무사, 케이스(case) 매니저라는 새 의료 직종을 만들었다. 이들은 환자의 진료와 일상생활을 관리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외래 진료 날짜나 검사에 맞춰 집으로 꼬박꼬박 전화해서 병원 방문을 거르지 않도록 챙긴다. 처방 약물을 매일 복용하는지 확인하느라 수시로 환자 집에 들러 약통까지 들여다본다. 영양 상태가 안 좋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서는 식료품 쇼핑도 대신 해준다. 환자가 병원에 타고 올 차량이 없거나 간병인이 없으면 차량도 무료로 집으로 보내준다. 환자 상태를 체크하느라 거는 전화는 하루 3300통. 그 결과 노인성 만성 질환자의 입원율이 같은 나이 또래 미국 평균보다 27% 줄었다.

    자꾸 낙상하는 환자가 있으면 집안을 살펴본 뒤 발이 걸려 넘어지기 쉬운 긴 털의 카펫을 걷어내고, 낙상 방지용 카펫을 깔아준다. 욕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깔판도 깔아준다. 하체 근육을 키우는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뼈에 좋은 칼슘제와 비타민D를 나눠준다.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다. 그 결과 낙상으로 엉덩이 골절이 생기는 환자 비율이 80% 감소했다.

    당뇨병 환자의 발톱을 깎아주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저소득층에게는 인슐린 주사도 그냥 놔준다. 나중에 환자가 합병증으로 입원하는 것보다 주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당뇨병 환자의 87%가 적정 혈당을 유지한다. 당뇨 발 궤양으로 발 절단 수술을 받는 비율을 미국 평균보다 60% 낮췄다.

    환자건강 좋아질수록 보험사도 수익

    심장기능이 떨어져 피가 돌지 않는 울혈성 심부전 환자 369명에게는 전자 체중계를 나눠줬다. 환자가 체중계에 올라서면 체중 값이 케어모어 본부로 자동 전송된다. 이 환자들의 체중이 는다는 것은 심장과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몸에 물이 쌓인다는 표시다. 하루에 체중이 3파운드(1.36㎏) 늘거나, 하루 1파운드(0.45㎏)씩 3일간 늘면, 케어모어는 즉시 환자를 치료센터로 데려와 약물치료를 강화한다. 그 결과 심부전 환자의 입원율이 미국 평균보다 39% 줄었다.

    이런 식으로 케어모어가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어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수록, 정부로부터 받는 건강관리 대행 서비스 총액에서 비용은 줄고 수익이 늘어난다. 이 회사의 수익률은 다른 의료보험회사의 2~3배다. 오바마 정부는 케어모어가 노인성 만성질환 관리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며 경영진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켄 김(Ken Kim·내과 의사) 의료총괄이사는 "고령 사회에서 날로 늘어나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해법은 바로 이 같은 효율적인 통합 진료와 질병 예방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