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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고고학)

[만물상] 반구대 암각화 구출하기

[만물상] 반구대 암각화 구출하기

  •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 2013.05.01 23:16

    1971년 12월 불교미술사학자 문명대 교수가 울주군 대곡천 일대를 답사하고 있었다. 답사팀이 오니 동네가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마을 사람이 다가와 귀가 번쩍 트이는 얘기를 했다. "점심 먹고 나무하기 전에 쉬고 낮잠도 자는 곳에 호랑이 그림 같은 게 있다"는 것이었다. 찾아가보니 가로 10m, 세로 4m 바위 벽에 300점 넘는 동물·사람 그림이 빽빽했다. '우리 문화재의 맏형'으로 부르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이렇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반구대 암각화는 5000~7000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여긴다. 새끼를 업은 고래, 벌거벗고 춤추거나 피리 부는 사람, 우리에 갇힌 호랑이…. 문자로 전해지지 않는 선사시대인의 삶을 생생하게 알 수 있어 '그림으로 쓴 역사책'이라고도 부른다. 여러 사람이 배에 타 고래를 잡는 모습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그림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중요한 유적이 문화재(국보 285호)로 지정된 것은 발견 후 24년이나 지난 1995년이 돼서였다.

    
	반구대 암각화 구출하기 - 일러스트
    ▶비바람 속에서도 수천 년 원형을 간직해 온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후 병을 앓기 시작했다. 지방 기관장들은 임기가 끝나면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기념으로 챙기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병풍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들은 탁본을 해 연구자들에게 팔러 다니기도 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기 6년 전 울산 주민에게 식수(食水)를 대기 위해 대곡천 하류에 지은 댐은 더 큰 문제였다. 댐 최고 수위(水位)는 해발 60m이고 반구대 암각화는 해발 53m에 있다. 댐에 물이 차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날이 일년에 여덟 달이나 됐다. 이런 '물고문'에 암각화가 갈라지고 부스러졌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0~30점으로 줄었고 바위 표면은 24%나 망가졌다.

    ▶새누리당이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임시 제방을 두르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일단 둑으로 물을 막아 암각화를 물에서 구출하고 울산 시민 식수원 대책이 따로 마련되면 댐 수위를 낮추고 제방을 허문다는 방안이다. 지난 10년 문화재청이 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 울산시가 제방을 쌓는 방안을 갖고 싸우는 중에도 반구대 암각화는 계속 망가져 왔다. 새누리당 안(案)은 타협점인 셈이다. 스페인 알타미라,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세계에는 1만~3만년 되는 선사시대 그림도 많다. 우리도 반구대 암각화 하나쯤은 온전히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