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3.14 03:11
[롱받는 '외국어 범벅' 패션 언어]
-패션업계, 정체불명 언어 남용
조사 빼면 우리말은 거의 없어… 인터넷에선 이를 풍자한
용어 유행
-외국어라야 '엣지'있나?
고급스럽다는 인식에 점점 퍼져… 한국어 패션 언어 못 만든 탓도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붙어 있는 제품 설명이다. 한글로 썼지만, 해석 없인 읽을 수 없다. 이 문장을 '해석'하면 이렇다. "예술적인 감성으로 만든 옷에 고급 맞춤복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더해, 여성성을 세련되고 예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패션 언어'라고 불리는 말의 현주소다. 이렇게 정체불명의 외국어가 난무하는 패션 업계 언어가 새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선 일부 네티즌이 이렇게 조사와 어미를 떼어내면 우리말이라곤 거의 없는 패션 용어를 두고 '보그병신체'라고 불러 큰 화제를 모았다. '보그'는 유명 패션 전문지 이름이다. 지난 삼일절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가 '보그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 시대의 패션 언어를 찾아서'라는 글을 써서 인터넷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김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말로도 쓸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외국어로 쓰는 패션 업계의 관행이 몹시 답답하고 안타깝다"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만의 패션 언어를 만들지 못해 벌어진 서글픈 현상"이라고 했다.
◇"기왕이면 잉글리시로 리에딧"?
회사원 이인영(33)씨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매장 직원이 '고객님, 이 제품은 브라운이나 블랙은 없고 화이트와 탠저린만 있습니다. 비비드한 컬러 자체가 콘셉트거든요'라고 하더군요.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말로 설명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매장 직원이 당황해 하더라고요"(웃음).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한 패션 전문지 기자도 "처음 입사해서 가장 많이 지적당한 게 바로 문체였다"고 했다. "줄무늬 주름치마라고 썼다가 왜 '스트라이프 패턴의 드레이핑 스커트'라고 안 썼냐고 혼났다. '잉글리시로 리에딧'하라고 하시더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젠 나도 우리말로 글 쓰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하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허영과 허세의 언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션 언어는 방송에서도 패러디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 2009년 SBS TV 드라마 '스타일'에서 주인공 박기자(김혜수)는 입만 열면 "엣지 있게"란 말을 외쳐 화제를 낳았다. 드라마 평론가 공희정씨는 "괜히 어려운 외국어를 써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패션 업계 사람들 모습을 풍자한 대표적인 대사"라고 했다.
패션 업계의 언어는 개그의 소재로도 애용된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꽃미남 수사대' 코너에서 개그맨 박성호는 "여기가 무슨 프레타 포르떼(pr�tt-�Y-porter)야?"란 유행어를 남겼고, '스타일' 코너에서 개그우먼 장도연과 박나래 등은 괴상한 옷차림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이게 바로 스타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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