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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교육 대통령)선거/문화

잊혀진 천재장인 심부길의 나전도안.

입력 : 2013.02.26 18:21

2012년 문화재청에서는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의 발족과 더불어 <보유자의 유품 기탁전>을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가 스승인 심부길 보유자(1906~1980)의 유품을 기탁하였다.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2012년 가을날, 수유리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보유자의 공방으로 향했다.



국립무형유산원이 기획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유품 기탁전>에 스승의 유품을 기탁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찾아가는 길이었다. 심부길은 1916년 6월 3년 일제강점기에 나전칠기로 명성을 떨치던 전성규(1880~1940) 선생을 찾아가 1925년부터 문하생이 되어 도안법,도장법,상사 자르기,상사 부착법,문양 제작등의 기예를 배웠다. 그가 끊음질의 대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생전에는 스승 전성규의 제자 중 하나인 김봉룡(1903~1984)이라는 스타급 장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해 문화재위원이던 예용해 선생이 김봉룡 선생을 조사하러 갔다가 그곳 공방에서 작업하던 그를 발견해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4호 끊음장 보유자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보유자가 되었음에도 심부길의 삶은 여전히 신산하여 여든이 넘은 1991년에 정수화와 공방을 함께 사용하며, 일주일에 한번씩 공방에 들러 제자를 가르쳤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는 생계가 어려워 1993년 정선생이 문갑 1쌍과 서류함 1개에 2천만원을 드리자, 스승께서 도구와 드로잉까지 맡겼고 그것이 오늘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막상 심부길 보유자의 나전 도안을 그린 기법은 소소하게 나눌 수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문양을 계획하면서 드로잉한 것으로 연필이나 붓으로 그린 것이고, 둘째, 드로잉한 것으로 나전 자개를 붙이고 옻칠을 올린 후 옻을 닦고 잘못된 곳을 수정하고자 베껴낸 것이며, 셋째, 완성한 나전 작품 위에 올려놓고 연필로 건탁을 한 것이다. 이러한 세 종류의 것 중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끊음질의 대가로서 그가 즐겨 생전에 썼던 문양은 국화문, 거북문, 미자구문, 싸리꽃 문, 백문, 회포문, 반자문, 둥근수자문, 싸리짝문, 대나무, 쌍희자문, 아홉 끝뇌문, 성틀뇌문, 거북뇌문, 국화뇌문, 다섯끝뇌문, 관사무늬, 세모싸리문, 네모부자문, 네모귀자문, 산수화문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나전문양과 마찬가지로 유품으로 남겨진 도안 또한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산수, 인물, 동물, 기하, 문자 등이 그것이다. 물론 심부길의 이러한 도안들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조합되어 다채롭게 변주된다.



우리는 전통 공예에 종사하는 장인들에 대해 조선시대의 유물의 형태나 문양을 그대로 베끼거나 민화나 소재 등에서 기존의 익숙한 이미지를 답습한다는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심부길의 나전 도안은 기존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떤 것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주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물론 있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 작품의 크기나 규모에 따라 세부 요소만 선택하거나 형태를 단순화시키거나 새롭게 변형시켜 현대적인디자인으로창안하는수준까지나아갔다고생각된다.



그동안 우리의 문화재 정책이‘원형유지’원칙을 통해 사라질 위험에 처했던 문화재 보존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나,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형문화재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970~1980년대 당시 이미 많은 재료가 바뀌었고 현대식 도구를 사용했음에도 옛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길 강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은 문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조선 시대 경공장처럼 작업하길 바라면서 문양을 현대화하거나 도구를 개량하거나 재료를 과학화하거나 시설을 개선하는 것을 막은 것은 아닌지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대목이다. 때문에 심부길과 같은 천재가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는 그래도 장인 혼을 발휘하여 자신의 작업을 하면서 묵묵히 자신 의 천재성을 문양 속에 오롯이 표출한 것 같다. 현대의 전통 공예 장인들도 심부길처럼 전통의 뿌리를 두면서도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제작하게 되길 희망한다.


글 · 사진. 장경희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