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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백세 건강 유지

힘은 넘치는데 소외감… 욱하는 노인 는다

힘은 넘치는데 소외감… 욱하는 노인 는다

  • 허자경 기자
  • 이시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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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3.08 03:05 | 수정 : 2013.03.09 05:45

    [61세 이상 강력·폭력범죄 피의자, 5년새 최고 2.5배 증가]
    70대, 이혼 아내·장모 흉기살해
    60대, 이웃여성 성폭행 실패하자 휴지에 불 붙여 안방에 던져…

    욱하는 노인 왜 느나 - 의학 발전으로 60세 넘어도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지만… 사회는 '잉여 인간' 취급에 분노

    지난달 28일 퇴근 시간 무렵 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에 탄 이모(63)씨는 자리에 앉아있던 김모(58)씨에게 느닷없이 "어린놈의 ××가 어른한테 자리도 양보 안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김씨가 앉아 있던 자리는 경로우대석이 아닌 일반석이었다. 김씨가 "일반석인데 내가 왜 양보해야 하느냐"고 대꾸하자, 갑자기 흥분한 이씨는 김씨에게 "누구한테 배운 말버릇이냐"며 얼굴을 붉혔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이씨는 원래 내려야 했던 역까지 지나쳐 버린 뒤 자리에 앉아있던 김씨가 목적지에 도착해 내리자 따라 내렸다. 역사 밖까지 쫓아간 이씨는 김씨의 멱살을 잡고 마구 폭행했다.

    '폭주노인(暴走老人)'이 등장하고 있다. 쉽게 흥분하는 노인, 감정이 폭발해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들이 우리 사회 안에 늘었다는 것이다. '폭주노인'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중반 일본 사회에 노인범죄가 폭증하며 만들어진 신조어(新造語)다. 일본에서는 '폭주노인'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폭주노인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 범죄자 인구비(인구 10만명당 범죄자수)는 2001년 1076명에서 2010년 1923명으로 78%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 인구비가 낮아진 것과는 정반대의 추세다.

    일반 범죄뿐 아니다. 폭주노인 사회의 노인들은 상습 흉악범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강력·절도·폭력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충남 공주에서는 성폭행하려던 여성의 집에 불을 지른 A(60)씨가 구속됐다. A씨는 이웃인 B(여·54)씨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휴지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안방에 집어던져 불을 냈다. 이 화재로 가옥 33㎡와 가재도구가 모두 탔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이천에서는 75세의 남성이 이혼한 아내와 장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같은 해 4월 서울에서는 한 70세 남성이 지하철에서 몸이 부딪혔다는 이유로 또 다른 70대 노인을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화성에서는 황모(83)씨가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중 61세 이상은 1321명으로 나타났고, 폭력범죄를 저지른 노인은 2만3979명에 달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최고 2.5배로 늘어난 수치다.

    노인들의 범죄가 최근 들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길어진 평균 수명과 달리 60세가 넘으면 여전히 '잉여'로 취급하는 사회 인식이 충돌하는 데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60세 이전에는 일도 하고, 나름의 권력도 있던 사람들이 60세가 넘어도 '나는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왔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소외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그것이 범죄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염건령 한양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폭주노인'의 증가는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노인들의 절박한 외침이자 간절한 발신음(發信音)"이라며 "사회 여러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노인들을 하루빨리 사회적 네트워크로 다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