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20 23:15
박정훈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05년 3월, 특수강간죄로 기소된 김모(38)씨에 대한 선고가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려졌다. 김씨는 가정집에 침입해 14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전에도 두 차례 강간죄로 처벌받은 일이 있어 상습범으로 가중처벌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내려진 선고는 2년 6개월에
불과했다. 김씨는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병원 진단서를 제출했다.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여 형을 깎아준
것이었다.
2년 뒤 김씨는 춘천교도소에서 출소해 사법적 관리 대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등장한 것은 작년 7월이었다. 여대생을
성폭행하려다 검거된 그의 DNA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경기도 성남 일대를 무대로 연쇄 성범죄를 저지른 속칭 '성남
발바리'의 장본인이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간 지 6개월 만에 첫 번째 범행을 저질렀고, 5년간 자행한 성범죄는 신고된 것만 13건에 달했다.
그중 12건은 피해자가 11~18세의 10대였다.
정신병자라던 김씨는 일련의 범죄를 주도면밀하게 계획했다. 가스·전기 점검원을
사칭하며 가스요금 청구서 홀더까지 준비했다. 범행 후에는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치밀하게 정리하고 회수해갔다. DNA 흔적을 없애려고 물티슈를
가져가 피해자의 몸을 닦기도 했다. 이런 지능범이 정신병을 앓는 '심신미약자(心神微弱者)'가 맞느냐고 법조계 안팎에선
수군댔다.
7년 전 재판부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법원의 양형 기준에 따르면 특수강간죄의 기본 형량이 5~8년이지만,
당시엔 이런 명문화된 기준이 없었다. 그렇지만 김씨의 출소 후 행적을 보면 2년 6개월형 선고가 너무 적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제대로
선고가 내려졌다면 후속 범죄 13건 중 상당수를 막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상식을 뒤집는 엽기 판결은 한둘이 아니다. 전남
순천의 한 재판장은 1004억원을 횡령한 사립대 설립자를 병보석으로 풀어주었다. 호남 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던 이 설립자는 교도소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그런데도 법원이 심장병을 이유로 보석을 허가하자 사람들은 토호(土豪)와 향판(鄕判·지역판사)의 러브
스토리를 떠올렸다.
2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350여 조각으로 해체한 오원춘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심 재판부가 감형
이유로 '인육(人肉) 유통 목적이 없었다'고 밝힌 것을 보고 국민의 법 감정은 폭발할 지경이었다. 1년에 세금 2300만원(재소자 1인당 평균
경비)까지 써가며 흉악범의 여생을 보장해주는 게 옳으냐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제주 올레길 살인범 강성익은 23년 징역, 통영 초등생
살인범 김점덕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전자발찌를 찬 채 비아그라까지 먹고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 역시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가정이
불안해서…'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했다. 서진환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피해자 남편은 "도대체 얼마나 더 잔인하게 죽여야 사형이 되느냐"고
절규했다.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일부 판사가 범죄자의 인권에 경도(傾倒)돼 있다는 지적(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도 나온다.
판사더러
국민감정에 영합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일부 판사는 자기만의 성벽을 쌓고 그 안에 은둔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시 공부만 파고들다
3급(국장)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기득권 판사들에게 '시대정신'까지 기대하기란 무리일지 모른다. 그래서 검찰 개혁 못지않게 법원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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