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튀김에 끌리는 건 '곤충 시식'의 추억 때문
- 기사
입력 : 2013.01.26 03:05 / 수정 : 2013.01.26 14:13
두뇌, 혀에서 전달된 미각 정보 조합해 종합적인 맛 판단
음식에 대한 선호는 축적된 진화의 산물… 미각을 프리즘 삼아 인간의 뇌
탐사한 책
존 앨런 지음|윤태경 옮김|미디어윌|312쪽|1만5000원
"인간은 머리(두뇌)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씹고, 소화시키는 과정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복잡하게 '의사결정' '선택'의 과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혀 표면에는 1만 개의 미뢰가 있다. 미뢰 하나는 50~150개의 미각 세포가 모인 조직이다. 인간의 혀는 단맛·신맛·짠맛·쓴맛·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맛을 인식하는 기관은 혀가 아니라 두뇌다. 뇌는 전달된 미각 정보를 종합해 어떤 맛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지 저울질해 통합된 맛을 판단한다.
맛에 순응하거나 둔감해지는 것은 복잡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처음 마실 때 쓴맛에 움찔한다. 쓴맛은 음식이 해롭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미각 신호에 익숙해지면 아침마다 으레 커피를 마신다. 쓴맛 아래 숨겨진 커피의 다른 맛을 알게 되고, 커피를 마실 때 우리 몸이 느끼는 효과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신경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두뇌는 문화를 진화시킨 원천이지만 문화도 두뇌의 기능과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인간의 식단은 생물 현상이자 문화 현상"이라고 썼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떻게 뇌를 사용해 음식을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우리는 왜 바삭한 맛에 끌리나
바삭한 음식에 대한 선호 현상은 여러 문화권에 나타난다. 일본의 튀김 요리 덴푸라는 15~16세기 일본에 출입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선교사들 때문에 탄생했다. 돈가스도 유럽의 전통 요리 슈니츨을 일본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가장 바삭한 '자연식품'은 곤충이다. 메뚜기를 구워먹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 5000만 년 전에 출현한 최초의 영장류는 곤충을 즐겨 먹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삭아삭한 채소에 이르기까지 바삭한 음식에 대한 열광이 진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불을 이용하면서 훨씬 다양한 종류의 바삭한 음식이 등장했다. 불로 익히면 부드러워질 뿐 아니라 향기와 맛이 깊고 풍성해진다. 또 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삭해지는 '캐러멜화(caramelization)' 반응이 일어난다. 바삭한 음식은 특히 청각과 얽혀 있는데 영어권 사람들은 '크리스피(crispy)' '크런치(crunchy)' 같은 의성어만으로도 대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돼 식욕을 느낀다. "인류가 고기를 불로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가 2배 이상 커지고 진정한 잡식동물로 바뀌었다."
- 최초의 영장류는 오늘날 우리가 각종 튀김에 끌리는 것처럼 메뚜기 같은 곤충의 바삭한 맛을 즐겼을 수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요리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인간을 포함한 잡식동물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저것을 먹어도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음식 문화는 사실 '음식이란 영양소 분석을 통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로 요약된다. 이런 영양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요리와 가공식품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미국인에게 '캔 식품'이 익숙하고 친근한 이유다.
그런데 프랑스인은 왜 음식을 탐미할까. 그것은 프랑스 혁명기 전후 발달한 레스토랑에서 개인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사 경험을 제공하면서부터다. 저자는 "미국과 프랑스는 현대적 국가로 탄생할 때 평등을 주요 건국이념으로 삼았지만 음식 문화에서는 초점이 달랐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음식 문화의 평등이 다 배불리 먹고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이었다면, 프랑스에서는 맛을 평가하고 남과 소통하는 능력이 사회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프랑스에서 음식의 지위가 격상되면서 음식 문화는 복잡해지고 규범화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시각적 즐거움과 맛을 평가하는 미식주의의 발달이다.
◇매운맛은 고통인가 쾌락인가
두뇌에서 맛을 인지하는 부분과 쾌락을 느끼는 부분은 다르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평가할 수 있지만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
사람의 뇌를 MRI로 촬영한 결과 MSG와 이노신산(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을 함께 섭취한 사람은 각각의 조미료를 따로 먹은 사람보다 큰 쾌락을 느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구운 고기엔 레드 와인'처럼 두 맛이 섞일 때 쾌락을 평가하는 두뇌 부위가 훨씬 더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시판조미료에는 MSG와 이노신산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맛의 시너지는 인간이 초잡식동물이 된 원인을 설명해준다"고 저자는 썼다.
사람은 여행에 대한 욕망처럼 음식에서도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한다. 16세기에 유럽에 소개된 고추(매운맛)도 이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맛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정이 긍정으로 바뀔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내인성 아편'이 분비돼 신체가 가벼운 '러너스 하이(달릴 때 느끼는 쾌감)'를 경험한다는 가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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