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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동물, 새, 물고기, 식물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귀뚜라미 도심 습격과 왕따 릴레이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귀뚜라미 도심 습격과 왕따 릴레이

  •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 입력 : 2013.09.26 02:58

    먹이 찾아 떼를 이루는 곤충들, 동료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고육책
    모르몬 귀뚜라미 17초마다 동료 공격, 동료와 거리 유지 위해 계속 이동
    왕따 피하려 왕따시키는 아이들… 학교도 메뚜기떼 지나간 들판 될까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사진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달 밝은 밤,

     

     

     

     

     

     

     

     

    달 밝은 밤숲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귀뚜라미에게 가을의 전령사라는 말이 붙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귀뚜라미가 최근 공포의 대상이 돼 버렸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른바 '귀뚜라미 도심 습격 사건'이다. 미국 오클라호마주(州)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에는 귀뚜라미 떼가 도로와 건물 외벽, 간판을 뒤덮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1848년 모르몬교도가 모여 사는 솔트레이크시에도 귀뚜라미 떼가 출몰했다고 한다. 한 해 농사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위기였다. 그때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날아와 귀뚜라미를 모조리 잡아먹었다. 모르몬교도는 이를 '갈매기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귀뚜라미에게 '모르몬 귀뚜라미(Mormon cricket)'란 이름을 붙였다.

    사실 모르몬 귀뚜라미는 귀뚜라미가 아니라 여치에 가까운 곤충이다. 모르몬 귀뚜라미는 수년에 한 번씩 먹이가 부족한 봄에만 떼 지어 북아메리카 서부지역을 횡단한다. 메뚜기처럼 생겼지만 날지 못하고 걷는다. 하루에 2㎞씩 최대 10㎞까지 이동할 수 있다. 호주 시드니대의 스티븐 심슨 교수는 2006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모르몬 귀뚜라미는 동료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이동한다는 것.

    연구진은 모르몬 귀뚜라미 떼가 지나가는 길에 각각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들어있는 음식 접시를 놓아뒀다. 귀뚜라미는 탄수화물이 많은 곡식은 그대로 두고 단백질이 많은 곤충의 사체에만 관심을 보였다. 동시에 소금물에 적신 면봉을 뒀는데, 이 경우 소금 농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귀뚜라미가 몰려들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모르몬 귀뚜라미의 몸은 그 자체가 단백질과 소금 덩어리이다. 적당한 먹이가 없을 때는 상처 입은 동료가 귀뚜라미의 먹잇감이 된다. 모르몬 귀뚜라미는 17초에 한 번씩 동료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슨 교수는 귀뚜라미들은 제각각 동료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전체가 계속 이동을 하게 되고 결국 떼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심슨 교수는 이를 '강요된 행진(forced march)'이라고 불렀다.

    메뚜기 떼도 마찬가지였다. 심슨 교수는 2009년 '사이언스'지에 사막 메뚜기 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사막 메뚜기 떼가 지나가는 곳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인류 10명 중 1명꼴로 사막 메뚜기로 인해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다.

    원래 사막 메뚜기는 동료와 떨어져 산다. 행동도 온순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떼를 이루고 행동도 포악해진다. 메뚜기는 다른 곤충처럼 번데기 과정이 없다. 이른바 불완전변태(不完全變態) 곤충으로, 알에서 어린 새끼, 어른 벌레 순으로 자란다. 사막 메뚜기의 새끼는 평소 초록색을 띤다. 반면 떼를 짓기 시작하면 검은 몸에 노란 줄이 선명한 형태가 된다.

    과학자들은 메뚜기 뒷다리에 있는 감각기관인 감각모(感覺毛)를 자극하면 이와 같은 형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뒷다리를 자극하는 것은 바로 동료 메뚜기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메뚜기는 동료에게 군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 공포가 몸과 생활 습관을 180도 다르게 만드는 것. 심슨 교수는 동료가 다가오면 세로토닌 호르몬이 나와 형태 변화를 유도함을 알아냈다. 실험실에서 세로토닌을 주자 독거 메뚜기가 군집 메뚜기로 변했다. 반대로 세로토닌 분비를 막자 계속 독거 메뚜기로 남았다.

    귀뚜라미나 메뚜기의 강요된 행진은 요즘 학교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아이들이 언제든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 즉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아이들은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친구를 왕따시킨다.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이 오르면 그보다 더 독한 글이 줄을 잇는다. 메뚜기 떼가 지나간 들판에는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아이들의 '강요된 왕따 행진'이 휩쓸고 간 학교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참고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오클라호마주에 나타난 귀뚜라미는 모르몬 귀뚜라미가 아니라 초원에 사는 들귀뚜라미라고 했다. 원래 유럽에서 살던 종인데 사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유럽인이 이주해 나무를 잘라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점점 초원이 늘어났다. 덩달아 들귀뚜라미도 늘었다. 결국 들귀뚜라미는 미국인들과 함께 발전한 셈이다. 지난여름 유난히 높았던 기온과 계속되는 가뭄의 영향으로 수가 늘어난 귀뚜라미가 갈 곳은 익숙한 도시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음 공해를 유발할 정도로 수가 급증한 매미 역시 도시화의 산물이다. 가장 시끄러운 매미는 말매미다. 장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예상과 달리 말매미 밀도는 서울 강남과 과천이 경기도 소도시의 10배나 됐다. 고층 건물 탓에 도심은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섬이 된다. 말매미는 특히 높은 온도에서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