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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男子… 책 속 세계를 백과사전으로 만들다


지구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男子… 책 속 세계를 백과사전으로 만들다


입력 : 2013.09.07 03:37

['現存 최고 다독가' 알베르토 망겔 인터뷰]

16세부터 4년간 시력 잃은 보르헤스에게 책 낭독, 그 경험으로 작가의 길… 책에 대한 책 많이 써
번역 출간된 '인간이 상상한…'은 독서력 결정판 "글쓰기로 세계 이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읽기"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ㅣ알베르토 망겔, 자니 과달루피 지음ㅣ최애리 옮김ㅣ궁리ㅣ1256쪽ㅣ6만5000원

알베르토 망겔(Manguel·65)은 열여섯 살 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에서 일하다 한 손님으로부터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눈이 멀어 책을 볼 수 없었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였다. 소년 망겔은 보르헤스의 서재에서 4년 동안 책을 읽어주며 문학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때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많이 읽은 독서가'로 꼽히며 그 독서를 바탕으로 작가가 됐다.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은 책에 대해 쓴 책 중에서도 명저로 꼽힌다.

망겔이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작가 자니 과달루피와 집필한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은 그의 집요한 '독서력'의 결정판이다. 문학 속 허구의 공간을 실재하는 공간을 탐색하듯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드라큘라의 성, 미들어스(중간계), 오즈, 호그와트, 아틀란티스, 나니아, 원더랜드…. 소설 속 1300여곳의 지리·생태·역사·제도·풍습을 지도·삽화(제임스 쿡, 켄 너트 그림)와 함께 담은 가이드북과 같다. 구글 어스로는 볼 수 없는 판타지 세계의 구석구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망겔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보르헤스가 눈이 먼 이듬해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되고서 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하느님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은 내게 책과 밤(夜)을 동시에 주셨다." 한국 작가들도 이 책을 펴들고 눈앞이 캄캄해질지 모른다. 그들이 창조한 장소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망겔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에 대해 귀가 먹거나 눈이 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다음 개정판에 꼭 넣고 싶다"고 했다.

―상상의 장소에 대한 책이라니, 발상이 신선하다.

"그땐 젊었다(이 책은 1980년에 초판이 나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과달루피가 폴 페발의 소설 '흡혈귀 도시'에 대한 여행 안내서를 써보자고 했다. 재미있어서 몇몇 상상의 도시와 나라를 보태기 시작했고 결국 책이 된 것이다. 소설이 창조한 장소는 매혹적이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한 곳에 머물고 싶다면 달려야 하고, 샹그리라(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상낙원)에서 젊음을 유지하려면 그곳을 뜨지 말아야 한다. "

―집필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상상의 장소를 다룬 책이 너무 많았다. 수를 줄이고 절제해야 한다는 게 골칫거리였다. 지구 바깥의 장소, 천국과 지옥, 필명으로 감췄을 뿐 현실적인 공간은 다 버렸다. 책 수천 권을 읽어야 했지만 그땐 젊었고 에너지가 충만했다. 지금 나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 상상의 장소들에서 무얼 배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낯설다는 것. 그 어떤 상상의 장소도 아마존 밀림에 견줄 만한 풍요, 북태평양의 깊이, 분홍빛 사하라 사막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러나 상상의 장소들은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더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일러준다."

파울루 코엘류가 지난 4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Reality is different from fiction. In fiction, things need to make sense." 현실이 하도 갑갑해서일까. "삶은 왜 이토록 이해하기 어렵고 엉망진창인가" 하는 불평으로 읽혔다. 그런데 망겔에게 저 트윗을 들려주고 의견을 구한 것은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알베르토 망겔은 세계 최고의 다독가로 꼽힌다. 아래 지도는 망겔이 독서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해 그려낸 동화‘피터 팬’의 배경‘네버랜드’.
알베르토 망겔은 세계 최고의 다독가로 꼽힌다. 아래 지도는 망겔이 독서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해 그려낸 동화‘피터 팬’의 배경‘네버랜드’. /궁리 제공
―코엘류의 말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일 수도 있다.

"내게 코엘류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표절을 일삼는 사람이고 돈벌이를 위해 문학을 파는 창녀다(코엘류의 출세작 '연금술사'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라즈니쉬의 '배꼽', 탈무드, 천일야화 등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신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는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독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보르헤스는 '작가는 쓸 수 있는 것을 쓴다. 그러나 독자는 바라는 대로 읽는다'는 말을 남겼다."

―사전은 운명적으로 불완전하다. 독자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해오고 있나?

"책도 그렇지만 사전은 특히 독자가 중요하다. 독자가 공저자(共著者)인 셈이다. 1999년 개정 증보판에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와 '금지된 숲'을 넣었듯이 다음엔 한국 문학 속 상상의 공간도 넣고 싶다(역자는 '아즈카반' '호그스미드' '비밀의 방' 같은 항목도 채워넣었다)."

―다음 책은?

"6년 동안 뭘 쓰고 있긴 한데 아직 모르겠다. 문학은 마술과도 같아서 책은 저자가 멈춰야 비로소 나타난다."

망겔과 과달루피는 이 책에 원작이 없는 상상의 장소를 한 항목씩 그럴싸하게 지어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서평가가 그중 하나를 콕 집어 "어렸을 때 무척 좋아했던 책"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망겔은 한국어판 서문에 "허구의 힘이란 그런 것"이라고 썼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 옆에 꽂아둘 책이다. 원제 The Dictionary of Imaginary Places.


☞알베르토 망겔

출생 1948년 아르헨티나 직업 작가, 기자, 번역가, 편집자, 독서가(하나를 꼽으라면 ‘독서가’라고 답한다)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준 시기 1964~68년 거주국 아르헨티나·이스라엘·프랑스·영국·이탈리아·타히티·캐나다 언어 능력 스페인어·영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아랍어 대표작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자주 인용되는 말 “독서하는 능력이 인간이라는 종(種)을 정의한다” 수상 메디치상(프랑스), 매키터릭상(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