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감(교육 대통령)선거/책

'갖지 못했다'는 열등감, 일본군의 狂氣를 만들다


'갖지 못했다'는 열등감, 일본군의 狂氣를 만들다

  • 김태훈 기자
  • 입력 : 2013.07.13 03:02

    "내가 죽든 적이 죽든 죽을 때까지 공격"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무장 강조
    칭다오 전투에서 2차세계대전 패전까지, 가미카제·옥쇄… 日의 전쟁 철학 파헤쳐

    
	'미완의 파시즘'
    미완의 파시즘|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김석근 옮김|가람기획|400쪽|2만5000원

    1차세계대전이 개시된 1914년, 연합군 일원인 일본은 독일이 점령한 중국 칭다오(靑島)를 공격해 승리했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보병끼리 붙는 백병전이 아니라 포탄을 쏟아부어 적진을 초토화하는 '물량 공세'를 폈다. 일본 군부는 그러나 승리에 도취되기보다 절망했다. 그들이 보기에 독일은 '가진 나라'였고 일본은 '갖지 못한 나라'였다. 비록 작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모든 분야에서 앞선 독일, 더 나아가 미국과 전면적으로 맞붙는다면 패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이 책은 칭다오 전투 승리에서 2차세계대전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육군의 전쟁 철학을 파헤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가미카제(新風) 특공대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연합국 전함에 전투기로 돌진했고, 남양군도의 군인들은 항복하느니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모두 전사해버리는 옥쇄(玉碎)를 감행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교수인 저자는 집단적 광기(狂氣)에 가까운 당시 일본군의 정신 깊은 곳에 '갖지 못한 나라'라는 자의식, 혹은 깊은 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섬멸전 신화의 탄생

    오바타 도시로(1885~1947)는 군부 내에서 일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건설을 주창한 황도파(皇道派)를 대표하는 인물로, 일본 육군의 전쟁 지휘 매뉴얼인 '통수강령'에 섬멸전 개념을 넣도록 주도했다. 오바타는 물량 면에서 유럽 열강에 밀리는 일본이 승리하려면 보급을 차단하는 등 상대가 장기전에 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하며, 이를 실현할 방법으로 기습을 통한 '단기간의 섬멸전'을 주장했다. 섬멸전에서 승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전력이 아니라 전투에 임하는 군인의 자세라고 그는 강조한다. "군대와 병기와 탄약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걸로 싸우는 것이 일본 육군의 기본이다"는 것이다. 그는 1차대전 당시 13만명의 독일군이 50만명의 러시아군을 기습 포위해 사실상 전멸시킨 타넨베르크 전투를 일본 육군이 지향해야 할 전쟁의 모델로 삼는다. 저자는 독일이 거둔 예외적인 한 번의 승리를 자신이 치를 모든 전투에 적용하려 하면서 일본군은 극단적인 정신주의의 길로 빠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섬멸할 수 없다면 옥쇄하라

    1920년대 중반, 황도파를 군부에서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한 '통제파'는 오바타의 전쟁철학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갔다. 통제파의 중심 인물인 이시와라 간지(1889~ 1949)는 "적을 섬멸할 수 없다면 아군이 섬멸될 때까지 계속해서 싸우라"고 주장했다. 뒤처진 국력을 만회하기 위해 국가 총동원 정신을 국민에게 강요하기 시작한 것도 통제파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투입된 가미카제(新風) 자살특공대원들.
     태평양전쟁 말기에 투입된 가미카제(新風) 자살특공대원들. 이들은 전투기를 몰고 미군 전함에 돌진했다. /Corbis 토픽이미지
    일본 육사 8기 출신인 나카시바 스에즈미는 일본군의 정신주의를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 역시 무력에서 미국에 뒤처지는 일본이 승리하는 길은 오직 정신 무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투 현장에서의 정신 자세를 규정한 전진훈(戰陣訓) 전파에 나서 "열세일지라도 죽을 때까지 공격을 계속하고, 만약 진다면 전원 전사하라"고 외쳤다.

    ◇침략에 대한 반성은 없어

    저자는 옥쇄라는 단어를 사용해 전멸을 미화하고, 일반 국민을 옥쇄라는 거짓 언어에 취하게 만들어 아군의 전멸 소식을 영웅적 비극으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비판했다. 정신력이라는 무형의 전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거짓 확신을 심었다는 것이다. 또한 집단적 광기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과정에는 일본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니치렌슈(日蓮宗)의 가르침도 한몫했다고 비판한다.

    책의 큰 줄기는 제국주의 일본군의 극단적인 정신주의가 패전을 초래하고 일본군 전몰자를 늘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변국가에 어떤 피해를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제 패망이 주는 교훈도 '침략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발돋움은 신중하게. 되든 안 되든 하늘에 맡기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 물자가 뒷받침해주고 숫자가 내부를 떠받쳐주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헌법 폐기와 군대 보유를 추진하는 아베 신조 총리라면 이 책에서 "일본은 이제 '가진 나라'가 됐다"며 극우의 길을 택한 구실을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