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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료/가장무서운 치매(암)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2주에 한 곡씩 新曲 외워 부르세요, 치매 막는 최고의 뇌운동이죠"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2주에 한 곡씩 新曲 외워 부르세요, 치매 막는 최고의 뇌운동이죠"

  •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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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06 03:01 | 수정 : 2013.08.06 03:58

    21] '75세에 뇌혈관 나이는 30代' 가수 현미의 치매예방 비법

    -20년전 치매로 세상 뜬 어머니
    동생네 애 봐주러 미국 가 10년, 영어 못해 거의 집에서만 생활… 그렇게 멍하니 있다 치매 걸려
    -21년째 노래교실 운영
    가사 외우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뇌 쓰니 뇌건강엔 최고… 수강생중 3분의 1이 80~90代
    -끊임없이 머리 쓰라

    물건값 계산 꼭 암산으로 하고 車로 이동 땐 구구단 외우고… 규칙적·긍정적 생활도 중요[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가수 현미(75)씨는 30분 후부터 시작하는 노래교실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부를 노래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오늘 복습할 곡은 지난주에 배운 조용필의 'Bounce(바운스)'다. 현씨는 "다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조금 어려워도 신곡을 계속 배워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배워야 뇌(腦)세포를 자극해 기억력이 안 떨어진다"고 말했다.

    노래교실 학생 30여명 중엔 올해 나이 80대인 회원이 8명, 90대인 회원도 2명이나 된다. 이들도 열심히 영어가 섞인 가사를 따라 불렀다. 현씨는 "가사 보지 말고 외워서 불러봐요. 이 나이에 머리 쓸 일 없잖아요. 외워서 불러야 치매 안 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라며 회원들을 독려했다. 1시간여 동안의 노래교실을 마친 현씨는 "21년째 노래교실을 계속해왔다"며 "2주에 한 번은 꼭 신곡을 배우는데 가사 외우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머리를 쓰게 되니까 뇌 건강에는 최고"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린 가수 현미씨의 노래 교실.
    요즘 인기곡은‘내 나이가 어때서’랍니다 -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린 가수 현미씨의 노래 교실. 학생 30여명은 가수 조용필의 신곡‘Bounce(바운스)’, 오승근의‘내 나이가 어때서’를 따라 불렀다. 현씨는“21년째 노래교실을 하면서 나도 열심히 신곡을 배우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치매 예방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현씨는 최근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뇌 검사에서 '뇌혈관이 여느 30∼40대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하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현씨는 "열심히 치매 예방에 힘쓴 결과 같아 뿌듯하다"며 "멍하니 있지 않고 항상 머리를 쓰려 하고 차로 이동할 때도 길가에 있는 간판을 계속 읽어보고 구구단도 죽 외어 본다"고 말했다.

    현씨의 치매 예방 노력에는 20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8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생업을 위해 서울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녀 별명이 '동서남북'일 정도였다. 그랬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부터 심한 치매를 앓았다. "어머니가 막냇동생 아이들을 봐주러 미국에 가셔서 그곳에 10년 넘게 계셨어요. 영어가 안 되니 거의 매일 집에만 있어야 했고요. 생기 넘치고 활달하던 분이 매일 멍하니 앉아만 있다 보니 치매가 온 것이라 생각돼요." 치매 전문의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활동을 지속하면서 뇌를 계속 활용하는 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현씨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왔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이미 뇌 한쪽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만 간직한 채 최근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 형편이 어려웠던 옛 시절의 기억만 가진 어머니는 칫솔이나 숟가락, 젓가락이 보이면 양말 속에 꽂아 보관했고, 새벽마다 쓰레기 수거함을 뒤지며 쓸 만한 물건을 찾아 헤맸다.

    
	현미가 추천하는 치매 예방법.
    현씨는 "잠을 안 주무셨고, 새벽에 집을 나가서 실종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경찰서에서 '자신이 현미 엄마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맞느냐'고 전화해준 덕에 번번이 찾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딸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천만다행이었던 셈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더구나 현씨와 함께 살며 어머니를 보살피던 현씨의 큰이모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치매에 걸렸다. 치매 가족력(歷)을 확인한 현씨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치매 예방에 힘쓰게 됐다.

    현씨는 치매 예방을 위해 '뇌를 자극하는 활동' '규칙적인 생활' '긍정하는 마음 갖기'를 추천했다. 현씨는 "지인들 전화번호를 외우고, 계산은 꼭 암산으로 하고, 신곡은 물론이고 예전에 불렀던 팝송도 기억을 되살려 불러본다"고 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방송 녹화가 없는 날에도 8시간 수면과 운동, 소식(小食)을 꼭 지킨다. 현씨는 "가장 중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과 성격"이라며 "아무리 안 좋은 일도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이 너무 소중한데 지난 일 후회하고 앞으로 일을 걱정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현씨를 진찰한 초대 대한치매학회장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은 "스트레스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를 파괴한다"며 "긍정적인 성격은 스트레스를 빨리 없애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요즘 현씨의 노래교실 학생들한테 가장 인기 있는 노래는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다. 현씨는 "80, 90대 어르신들도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부를 때는 다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좋아한다"며 "나이 들어서도 마음에 설렘을 간직하고 살면 치매도 비켜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진짜 치매가 오면? 그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