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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음식)/맥주 만들기 쉬워요!!

[우리들의 별천지] "맥주 만들기? 라면보다 쉬워요"


[우리들의 별천지] "맥주 만들기? 라면보다 쉬워요"

  • 조재희 기자

  • 입력 : 2013.06.19 03:07

    맥주 만들기 동호회 ‘맥만동’
    '나만의 맥주' 찾아 모인 사람들 회원 수 1만9000명의 최대 동호회
    국산 맥주 종류 너무 적어 불만 발효통·효모·원액 사와 직접 제조
    함께 못하는 자녀들에게 미안해…공들여 만든 맥주라 과음은 안해요

    지난 15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굿비어' 공방(工房). 30대 연구원부터 50대 사장님까지 여섯 남자가 한둘씩 모였다. 굿비어 공방은 이름 그대로 맥주를 만드는 곳. 맥주 만들기 교육도 하고, 소시지나 베이컨 제조법도 알려준다. 이들은 다음카페 '맥주 만들기 동호회(맥만동)' 회원들, 한 달 뒤 있을 모임에 들고 갈 맥주를 손수 만들려고 이곳에 모였다. 이들이 이날 만든 맥주는 모두 18L나 됐다.

    맥만동은 이른바 하우스 맥주라는 마이크로브루어리(microbrewery·소규모 맥주 양조장) 설립이 가능해진 2002년 탄생했다. 이전만 해도 국내엔 미국식 라거(lager·발효가 끝나면서 가라앉는 효모를 사용하는 맥주 종류, 탄산의 청량감과 깔끔한 맛이 특징) 맥주만 소개됐던 상황. 전국적으로 하우스 맥주 가게가 100여개 생겨나면서 맛이 새로운 맥주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일부 '얼리어답터'는 서울 이태원에서 맥주 재료를 사 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인 국내 맥주의 밍밍한 맛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한둘 모이면서 맥만동은 만들어졌다. 설립 12년째를 맞은 맥만동의 누적 회원 수는 1만9000명, 자주 방문하는 회원은 1000명 선에 이른다. 서울·경기, 부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청, 광주·전라 등 강원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지역 모임도 활발하다. 매달 열리는 지역별 정기 모임이나 번개 모임엔 50명 이상이 모이기도 한다.

    회원들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재료부터 제조 노하우 등 맥주 만들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맥주 안주인 '오징어 말리는 법'을 소개한 회원도 있었다. 하지만 맥만동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중시하는 동호회다. 매월 개최하는 지역별 정기 모임뿐만 아니라 전국 회원들이 모이는 1박 2일 MT와 가을 축제도 해마다 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예산에 있는 와이너리에서 60여명이 모여 MT를 갖고 직접 만든 맥주 맛을 즐겼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불광동 굿비어 공방에서‘맥주 만들기 동호회’회원들이 궨발효통’에 재료를 넣고 배합하며 즐거워하고 있다./성형주 기자
    지난 15일 오후 서울 불광동 굿비어 공방에서‘맥주 만들기 동호회’회원들이 궨발효통’에 재료를 넣고 배합하며 즐거워하고 있다./성형주 기자
    3월에는 전라남도 고흥군과 함께 유자 맥주 체험 행사도 열었다. 4월엔 회원들의 실력을 겨루는 '2013 라거 맥주 챔피언십'을 부산에서 개최했고, 5월엔 경기도 가평의 맥주 공장을 단체로 찾는 등 특별한 행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를 중심으로 모인 동호회다 보니 회원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평범한 회사원, 학생, 주부에서부터 연구원, 기업체 임원, 요리사, 대학교수까지 없는 직업이 없을 정도다. 나이 구성도 20대 초반에서 50대까지 넓게 퍼져 있다.

    작년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紙)는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기사를 게재,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맥주 시장 과점을 해결하겠다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맛있는 맥주를 위해 모인 이들의 '싱겁고 맛없기로 유명한' 국내 맥주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맛이 없다기보다 종류가 적은 게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지나치게 한정된 페일(pale·연한) 라거 일색이라는 것이 아쉽다", "맥주 종류가 수만 가지인데 국내 맥주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맛을 평하기 앞서 다양한 맥주가 퍼져야 한다"와 같은 의견들이 나왔다. "독점 때문에 품질 향상엔 노력하지 않고, 마케팅과 광고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외국산 맥주에 잠식될 날이 멀지 않다"는 '독한' 의견도 있었다. "소주에 타서 먹는 용도보다는 맥주 자체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국내의 '소맥 폭탄주' 문화를 꼬집는 애호가다운 의견도 있었다.

    맥만동 회원들에게 맥주는 재료와 시간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손쉬운 음식이다. 준비물은 발효통과 맥주 원액. 우선 맥주 원액 3㎏을 발효통에 붓고 물로 희석해 20L로 만든다. 다음 효모를 뿌리고 뚜껑을 닫아 공기와 차단하면 하루 뒤 탄산이 생성되며 발효가 시작되고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지나 발효가 마무리되면 맥주병에 옮겨 담고 설탕을 넣는다. 이 상태로 2주가량 상온에서 숙성하면 끝이다. 고급형 기준으로 재료비 6만원을 들여 맥주 20L를 만들 수 있다. IT 업체에 다니는 최원규씨는 "시간이 몇 분이 아니라 몇 주라는 점만 다를 뿐 라면 끓이기만큼 간단하다"고 말했다.

    주류(酒類)를 취미로 하다 보니 안타까운 점도 있다. "술 입맛이 고급이 된다"는 농담 섞인 투정도 있었다. '술 동아리'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아쉽다. 광주에 사는 이헌씨는 "공들여서 만든 맥주라 회원들이 모이면 과음하는 일이 오히려 드물다"며 "다만 다른 동호회와 달리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미안하다"고 했다. 의료 분야 연구소에서 일하는 정인용씨는 "맥주를 좋아했지만, 60도가 넘는 맥주가 있다는 건 맥만동에서 알게 됐다"며 "우리 동호회에 오시면 맥주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