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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생물 이야기’ 출간 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 ‘怪’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괴짜 생물 이야기’ 출간 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 ‘怪’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기사입력 2012-10-31 03:00:00 기사수정 2012-10-31 03:00:00

 
술술 읽히는 생물책을 여러 권 낸 ‘달팽이 박사’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교수 제공
“어무이, 나도 학교 보내주이소!”

열네 살, 지게를 패대기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뒷산에서 퇴비할 풀을 한 짐 지고 내려오다가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우연히 본 게 화근이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마당에 지게를 내던지고 발로 차며 울부짖었다. “나보다 공부 못하던 놈들도 다 중학교 다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지게를 지고 살아야 합니꺼?”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자신의 몫으로 마련된 지게와 집안의 가난을 동시에 둘러메고 산으로 향해야 했던 소년은 그 길로 배움의 끈을 다시 붙들었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그의 이름 석 자 앞엔 ‘달팽이 박사’라는 별칭이 꼭 따라붙는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72)가 새 책 ‘괴짜 생물이야기’(을유문화사)를 냈다. 3년 가까이 교수신문에 연재해온 칼럼 ‘권오길의 세상읽기 사람읽기’를 추려 모아 새로 썼다.

“또래들보다 배움이 늦었어요.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은 시간 동안 산과 들에서 보고 자란 동물과 식물이 제겐 교과서나 다름없었습니다.”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생계를 잇기 위해 고교 교단에 섰던 권 교수. 밤낮으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읽던 어느 날 잡지의 한 면을 가득 채운 달팽이 사진을 보고 그는 달팽이
박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0년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20년 넘게 주말마다 접사렌즈를 들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미기록종 달팽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가 쓴 달팽이를 비롯한 연체동물에 관한 논문만 80편이 넘는다. 그는 “달팽이를 연구하다 보니 달팽이의 굼뜬 모습까지 닮아버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괴짜, 괴팍함, 괴상함 이런 것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절대 ‘괴’자를 예사롭게 보면 안 돼요.”

권 교수는 생물을 소재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한 1세대 지식인이다.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원색한국패류도감’ ‘생물의 애옥살이’ 등이 그 결과물이다. 새 책 속에 실린 다채로운 생물이야기도 이웃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듯하다. 유년 시절의 체험담을 섞어 이나 빈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사람은 모두 평발로 태어나며 똥오줌의 색은 적혈구의 시체를 보여준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한다.

그는 요즘 속담과 우리말에 담긴 생물들을 재발견하는 글을 쓰고 있다. 칡과 등나무가 얽혀 ‘갈등’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고 ‘옹고집’은 송골매가 어원이라는 사실을 일러 주는 책을 준비 중이다. 자연을 벗 삼기 어려운 요즘 어린이들에게 ‘과학심’(과학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을 키워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비 온 뒤 지렁이 만지면서 물어보면 더럽다고 내치는 부모들이 많으면서 해마다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 발표될 때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고 개탄합니다. 어린이날에 비싼 장난감 대신 해부현미경을 사주세요. 손톱도 머리카락도 관찰하다 보면 과학심이 곧 국력이 될 겁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