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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컴퓨터(빌 게이츠, 스티브잡스)

[기고] 기업가 정신과 법치주의를 조화시켜야

 

[기고] 기업가 정신과 법치주의를 조화시켜야

  • 정상조 서울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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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5.12 23:22

    
	정상조 서울대 법대 학장 사진
    정상조 서울대 법대 학장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창조경제의 핵심이 기업가 정신에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기업가 정신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며 혁신을 거듭하는 정신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기업문화를 끌어올리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축 하나는 누가 뭐래도 법치주의다. 법치주의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없다.

    기업이나 시장에서 법치주의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 대기업 경영자나 대주주들이 진정으로 법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자신의 사유물이 아닌 회사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경영 판단이라고 강변하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총수 일가=회사"라는 시대착오에 빠져 세금 안 내고 경영권을 물려줄 궁리만 해서도 안 된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과거 우리의 공권력은 회사 재산을 사적으로 빼돌린 재벌 총수에 대해서조차 실형으로 처벌하지 못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갑을(甲乙) 논란에서 보듯 우리 국민은 더 이상 갑 혹은 수퍼갑 행세를 하는 대기업들을 용납하지 않는 단계에까지 이를 만큼 의식이 성장했다. 이런 흐름에서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이 당당하게 이뤄지는 법 현실은 적어도 법학을 가르치는 학자의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둘째 이런 일이 마녀사냥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법학자로서 걱정도 있다. 법은 마녀사냥과 양립할 수 없다. 적절한 균형감각을 찾지 못한 채 당시의 분위기에만 휩쓸릴 경우 법치주의는 오히려 마녀사냥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예를 들어 최근 대기업 활동을 겨냥한 입법 시도가 '갑(甲) 때리기'의 포퓰리즘과는 무관한 것일까? 개선의 명분 아래 오히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세우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은 최근 갑자기 '엄벌 모드'로 전환된 검찰과 법원의 기업인들에 대한 법 집행에서도 하게 된다. 그들의 불법행위는 단호하게 처벌하되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다른 분야 재판에서처럼 기업인들에 대한 판결에서도 분위기 편승에 따른 모호성이랄까 자의성을 느끼게 된다면 법치주의를 향해 우리가 바른 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간 총수의 재산 빼돌리기나 안하무인식 행태에 반감이나 염증을 느낀 여론은 엄벌주의로 전환한 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경영 판단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일선의 경영자들은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한 기업인은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섣불리 구조조정을 감행하다가 누구처럼 배임의 수렁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점에서 곱씹어봐야 할 지적이라고 본다.

    미래의 법률가를 키워내는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법치주의 강화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론의 향방에 좌우되는 법률가들의 재량에 기업가들의 운명을 내맡기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는 아니다. 사익 추구의 악질적 행위와 기업을 키우기 위한 고심의 선택을 법리적으로 분별하기보다는 막연히 동일시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법치주의 대신 운명론이 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