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5 23:21
진오 대둔사 주지·㈔꿈을이루는사람들 대표

교민 가족의 도움 속에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때 지나간 길인 1번 국도를 달렸다. 승복을 입고 달리는 나를 향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각별했다. 대형 트럭 운전사는 경적을 울렸고, 일부 젊은이는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고 환호를 보냈다. 때론 눈이 내리고 강한 맞바람을 만나 고행이 따로 없었지만 추위나 바람이 앞길을 막기에는 우리 국민을 품어준 독일 사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교민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며 양국의 미래 발전에 작은 씨앗이 되고자 하는 발원이 더 뜨거웠다.
현지 언론과 교민신문에 보도가 되면서 지나가는 독일 사람들은 700㎞ 홍보물을 보고 놀라며 "어메이징(Amazing)!"을 연발했다. 숲길을 거니는 젊은 부부와 연인들, 평생을 함께해온 노부부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드넓은 땅과 숲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옛 동독과 서베를린 경계 지점인 포츠담의 글리니커(Glienicker) 다리를 지날 땐 냉전 시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로 불리던 곳이라 분단 조국을 떠올리며 더 오래 머물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열렸던 광장에선 손기정 선수가 달렸던 코스를 뛰었다. 오르막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는 지옥의 코스다. 나라 잃은 손기정도 골인 지점을 앞두고 죽을 각오로 달렸을 그 길을 달리며 내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드디어 4월 1일 베를린 중심부 '자유·정의·평화'의 불꽃이 타오르는 광장에 입성했다. 꺼지지 않는 불을 지탱하는 대리석에는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귀가 생생하다. 승리의 여신상을 돌자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많은 한인회 교민이 나와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해 주었다. 이렇게 본에서 베를린까지 700㎞를 완주한 순간 우리는 다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번 감사의 마라톤은 나를 또 다른 출발선에 서게 했다. 다음에는 최근 다시 삐걱거리는 한·일의 우호 증진을 위해 일본 쓰나미 피해 지역에서 도쿄까지 1000㎞ 마라톤을 준비 중이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향기로운 냄새를 퍼트리는 향처럼 그렇게 계속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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