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책 읽어주던 남자, 이번엔 '주말'을 읊다
입력 : 2013.03.30 03:03
나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그렸던 '책 읽어주는 남자'
이번엔 소설 '주말'로 테러 가해자를 내세워 연민의 의미를 묻다
좋은 문학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변화시키지만, 때로는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변화시킨다. 독일 헌법재판소 판사 출신인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Schlink·69)의 '주말(Das Wochenende)'도 그렇다. 슐링크의 렌즈를 통과하고 나면, 그 이전과는 다른 세상과 인간을 경험한다.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왜 삶은 더 빈곤해지고, 타인의 비밀을 공유했는데 왜 그와 공감하는 데 실패하는지를 슐링크는 흥분하지 않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주말'을 이야기하려면 작가의 전작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언급이 필연적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가 독일어권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작가의 대표작이자,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리더(The Reader)'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케이트 윈즐릿)을 받았다는 영광의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과거 청산과 관련해 선악의 이분법에 익숙했던 독자를 당황하게 했기 때문이다. 슐링크는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나치 피해자가 아니라 나치 가해자에 대한 애도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리고 '주말'에서는 테러의 피해자가 아니라 테러의 가해자에게도 연민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반제·반자본주의라는 명분으로 혁명에 방해된다면 무고한 민간인까지도 서슴없이 죽였던 1970년대의 서독 극좌 적군파 테러리스트 외르크가 그 주인공이다.
로맨스 형식을 띠고 있던 전작과 달리, 신작은 마치 상황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24년간 수감됐다 풀려난 외르크. 이 신념의 영혼을 위해 누이 크리스티아네는 주말 동안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다. 외르크의 옛 친구들을 교외 별장에 초대한 것이다. 대학 시절만 해도 혁명의 대의에 뜻을 모았던 열정이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제각각의 세계관을 가진 중년이다. 치과 병원을 몇 개씩 소유한 자본주의의 승리자 울리히, 젊었을 때는 과격했지만 이제는 주교가 된 평화주의자 카린, 24년 전 외르크의 은신처를 밀고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헤너, 그리고 예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했던 일제…. 동생을 위한 '치유의 주말'을 꿈꿨던 크리스티아네의 기대와 달리, 이 3일은 등장인물 간 갈등으로 끓어오르는 '긴장의 주말'이 된다. 역설적인 것은 모두가 선의로 진실을 고백하는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는 것. 여기에 외르크를 여전히 혁명의 아이콘으로 내세우려는 시대착오적 이념주의자 마르코와, 외르크가 버렸던 아들 페르디난트가 뒤늦게 가세하면서 '주말'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흥미로운 대목은 작가 슐링크의 문학적 전략이 '책 읽어주는 남자'와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진실의 은폐가 아니라 전면적 공개가 가져오는 결과의 윤리학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나치의 감시원이었던 한나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문맹(文盲)을 숨긴다. 재판 과정에서 그 사실만 고백하면 무기징역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걸 고백하는 게 한나에게는 더 치욕이었다. 어머니뻘의 한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베르크 역시 자신의 수치심 때문에 진실을 공개하지 못한다.
- /사진=아이솔데 올바움(Isolde ohlbaum)
상대적으로 '주말'의 완성도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책…'만을 선택하는 것은 세계의 절반을 포기하는 일. 17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된 이 두 권의 장편은 이런 관점에서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하는 동전의 양면이자, 두 조각을 합쳤을 때 완성되는 성찰의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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